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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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관계를 다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삼각관계가 문제가 되는 것은 거의 소설이 끝나갈 무렵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 이전은 주인공 다이스케의 내면이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그 감정에 충실하기로 결심하는 일련의 과정들이다. 나는 다이스케에게서 끊임없이 이상의 <날개> 주인공을 떠올렸다. 둘 다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게으름뱅이들이었으니까. 모두 지식인이었으나 무능력했고, 자의식과 감각은 너무도 예민해서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느낌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했다. 다이스케는 그것을 치러내고 그덕에 유유자적하게 보이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 


다이스케의 신경은 그만이 가지고 있는 빈틈없는 사고력과 예민한 감수성에 대해 지불해야 할 세금이다. 고상한 교육을 받은 대상으로서의 고통이다 그것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탓에 받아야 하는 불문의 형벌이다. 그러한 희생을 감수했기에 자신은 지금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아니, 어떤 때는 그러한 희생그 자체에 인생의 진정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페이지 : 16-17쪽  


둘의 다른점이 있다면 생활의 비참함의 정도일 것이다. 하나는 생활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으나 다른 하나는 생활을 하기 위해 기생에게 기생해야하는 처지였다. 전자의 무능력이 고상한 교양으로 치장될 수 있었던 것은 생활의 여유덕분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후자의 무능력이 안타까웠던 기억을 더듬으며 왠지 다이스케는 풍요로운 가운데 어리광을 부리는 인물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문학쪽에서는 사회적 아픔이 많았던 민족이 승자가 아니겠나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아무튼 다이스케는 실업자이면서 '선생님'소리를 들으며 제법 어려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기거하고 있는 '서생' 가도노가 자신의 의견도 제대로 말하지 않고 남의 의견도 그다지 진지하게 듣지 않는 면이 있다고 꼬집고 있지만 본가에 가서 주변 어른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살펴보면 가도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형수 우메코는 그에게 그것이 가족 모두를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분이 어째서 나 같은 사람에게 돈을 빌릴 필요가 있는 거죠? 이상하지 않아요? 아니, 말꼬리를 잡아 비꼰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시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 정도로 훌륭한 분이라도 돈이 없으면 나 같은 사람에게 머릴를 숙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페이지 : 121쪽  

이렇게 냉혹한 현실을 일러주어도 그는 자신의 생활태도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빵을 위한 일은 진정한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때문에 일을 하게 되면 자기 직업의 본질을 잃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돈이 있기 때문에 또한 직업을 가질 필요도 없다. 형수의 지적에는 화가 날 만한 요소가 분명히 있음에도 그는 화를 내지 않는다. 이상하리만치 다이스케는 화를 내는 일이 없다. 어떤 말에도, 어떤 행동에도. 그는 그것을 겁쟁이이기 때문이라고 비하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가 굉장한 중립적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사람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를 결혼시키기 위해 집안 식구들 모두 그를 교묘하게 꾀어내거나 속여도, 또 자신의 정략결혼시켜 사업상 안정을 추구하려고 했다는 부친의 말에도 그는 전혀 노여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인물들임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하지만 그 주된 원인은 약삭빨라서도  우유부단해서도 아니고 오히려 그가 융통성 있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이제까지 외곬으로 돌진하려는 용기를 상실하곤 했다. 그래서 다가가지도 물러나지도 않은 채 그대로 현상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현상을 유지하려는 그의 태도가 생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명백한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그가 평소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과감한 태도로 신념을 밀고 나갈 때 비로소 자각할 수 있었다.
 
페이지 : 304쪽  
친구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 다이스케는 히라오카와 미치요가 결혼하도록 중간에서 다리역할을 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당시에 자신의 본성을 거슬렀다. 미치요를 사랑하는 마음을 부정하고 그녀를 히라오카에게 보낸 것이다. 미치요도 이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은 미치요와 다이스케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녀는 그에게 왜 자신을 버렸느냐고 말했다. 그것은 한 때 자신을 품었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다. 그리고 그 댓가로 다이스케는 혹독한 사회에 내던져지게 될 것이다. 친구도 가족도 외면한 가운데 오로지 미치요 한 사람만을 데리고 풍랑을 향해가는 그에게는 각성을 요구하는 빨간 색조들만이 가득하게 번지고 있다. 

양산집 간판에 빨간 양산 네 개가 겹쳐진 채 높이 매달려 있었다. 양산 색깔이 또 다이스케의 머리로 들어와 뱅글뱅글 소용돌이를 쳤다. 네거리에 새빨간 색의 커다란 풍선을 팔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중략>... 나중에는 세상이 온통 새빨개졌다. 그리고 다이스케의 머릿속을 중심으로 해서 뱅글뱅글 불길을 내뿜으며 회전했다.
 
페이지 : 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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