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위하여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1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황제의 꿈을 꾸면서 꿈과는 다른 현실과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살았던 인물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연의처럼 기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박지원의 소설들이 떠오른다. 남에게 들은 것처럼 꾸며 이야기의 시작을 삼은 것이나, 일반에서는 부족하거나 모자란 인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의 논리력으로 오히려 정상적이라는 사람들보다 낫다고 평가하는 점에서 나는 호질의 도입부와, 광문자전 등의 내용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정감록이라고 하는 책에 기록된 천명의 내용. 그리고 정가가 나라의 주인이 되리라는 예언이 담긴 거울의 존재. 그리고 아이의 머리에 우연히 생긴 상처를 가지고 정처사는 아들이 황제가 될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왜 아들을 황제로 보이게 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트릭을 썼는지는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화자는 정처사의 입장과 황제측근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현대의 독자들의 사고를 고려해 본다면 그 반대자들의 의견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황제의 아버지는 사기꾼이고 황제 역시 미치광이일 뿐이다. 그러나 이 미치광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생활 터전을 얻어 살아갈 수 있게 되는 후반부에 가면 그들이 그렇게 허황된 미치광이로만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보여준 여러 덕목들이 그의 치명적인 결함들을 가린 것이다. 

황제가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망은 어느정도 삶에서 실현된다. 놀라운 것은 그가 모은 사람들이 대부분 정상의 범위에 있다고 할 수 없는 인물들인데도 그의 나라에서 맡은 부분을 충실하게 이루어낸다는 점이다. 일찍 죽은 마숙아는 사기꾼이었고, 우발산은 노비출신의 무지한 인물이었으며, 신기죽은 몽상가이면서 알콜중독자였다. 마숙아는 황제를 실로 황제라고 인정하지는 않았으나 그를 보좌하며 의리를 다 바쳤다. 그리고 가장 정상적인 인물 김광국의 경우에도 황제를 인정하지는 않았으나 그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어쩌면 황제가 실로 황제의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진짜 황제가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짜 황제였다면, 이들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미리 제거되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큰 권력은 분명 그를 타락시켰을 것이다. 

소설에서의 특이점은 이밖에도 현실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색하게 거리를 두고 있는 황제의 공간에 있다. 그는 한일합방과 독립운동을 겪으며 일제에 신음하는 국토를 살았다. 서구문물이 들어왔고, 공산주의의 유입되었으며 종교인들도 이 땅을 밟고 들어와 포교하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양상이 끊임없이 황제가 살고 있는 땅에 들어오고 때로는 위협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국가는 이를 잘 막아낸다. 황제의 천명때문이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순진한 사람들의 믿음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수십년의 세월에 걸쳐 이제는 생활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이제 황제의 국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소공동체가 과연 잘 지켜질 수 있을까. 높은 나뭇가지에 작은 둥지속에 든 알을 보는 것처럼 언젠가 고라니떼에 발각되는 것은 아닐런지 걱정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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