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위하여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2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나는 그 노인이 황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황제가 살았던 시기는 조선말-1972년경으로 그야말로 격동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이씨의 왕가가 이어지던 조선에서 태어나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그는 이후 일본에 의해서, 또 해방 이후에는 남과 북 각기의 이념에 의해서, 전쟁 후에는 정부라는 조직에 의해서 계속 자신이 차지해야할 왕좌를 놓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황제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았던 그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진정한 황제였음이 분명하다. 

비유하여 우리의 삶을 전장으로 여긴다면, 짐과 그대가 이룬 것은 그 커다란 승리였으리라. 한바탕 꿈이라도 누구든 꾸어보고 싶은 꿈이었으리라.
 
페이지 : 257쪽  
그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말은 그 전에 그가 했던 도가적 사상에서 비롯한 다스림에 더하여 꽤나 의미있는 말이다. 다스리지도 않고 다스림 받지도 않는다는 그의 최후의 깨달음은 그가 그런 의미에서 황제일 수 있었음을, 그리고 한바탕 꿈이었다고 해도 꾸어볼 만한 꿈이었다는 말에서 그의 삶의 모두가 거짓이었다고 하더라도 한 때 그가 누린 시절들은 제법 아름다웠음을 생각했다. 

<황제를 위하여>는 우리 역사의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을 재야에 숨어 황제로 이름했던 인물의 삶과 평행선상에 놓고 함께 전개시키고 있다. 역사는 이 재야 황제의 얼토당토 않은 주장과, 때로는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행운의 연속을 설명해주는 교묘한 장치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황제의 생활의 궁핍함과 황제 주변 사람들의 변화과정을 설명해주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황제의 삶과 함께 역사는 보다 냉철한 방식으로 관찰된다. 황제의 비판을 통해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배신과 반목을 통해서. 

묘하게도 황제의 측근들은 황제를 배신한 적이 없는 반면, 황제일가의 밖에서는 끊임없이 배신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충성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시대. 누구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떠한 관계도 버렸던 시대. 그 시대의 가장 순수한 알곡이 황제와 그의 충신들이라는 생각을 하면 실소를 머금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천명을 믿고 어디에나 좌충우돌했던 황제를 향했던 냉소가 마지막에는 그를 거부하는 세상을 향해 짓게 되는 것은 나 혼자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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