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박이문·박희원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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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이 공간. 그러니까 전부 다 합쳐도 80제곱미터를 넘지 못할, 이 공간에서 소설을 하나 만들어 내라고 한다면 어떨까. 다른 어떤 곳도 등장하지 않는. 그런 소설을 만들어 내라고 한다면. 아마도 머릿속에 일어나는 상상들을 구성해보거나, 집에 들어오는 새로운 인물들을 만들어 내거나 그럴듯한 사건을 찾기 위해 이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공간

등장인물들이 움직이는 공간은 테라스, 사무실, 침실 등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공간이다. 그와 그의 아내 A...가 사는 집. 프랑스 식민지의 어느 바나나 농장을 경영하는 그는 아내와 함께 더위와 벌레를 참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유일한 손님은 프랑크라고 하는 사내다. 그는 아내가 있지만 그의 아내 크리스티안은 아이때문이거나, 더운 날씨에 적응하기 힘든 그녀의 건강때문에 함께 오는 일은 거의 없다. 프랑크는 그들의 공간 안으로 들어올 때에만 의미가 있다. 떠나고 난 후에 그가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는다. 그는 그에게 보다는 그의 아내 A...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선만으로 존재하는 그

그는 시선만 존재한다. 그와 프랑크 그리고 A...가 함께하는 저녁식사시간이지만 자리가 세개라고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사소한 손짓, 입술의 움직임. 프랑크와 나누는 사소한 대화내용에 고정되어있다. 그 시선은 무엇을 밝히려는 것도 아니고, 찾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볼 뿐이다. 그에게는 이미 결론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새 시선만 존재하게 되었는지도. 그는 확인할뿐이다. 아내와 프랑크의 관계를. 그의 시선을 떠나 유일하게 상상해야만 하는 그들의 동행을.

변하지 않지만 변하는 일상

그의 관찰은 반복된다. 그러나 그는 전혀 반복되지 않는 일처럼 새롭게 쓴다. 오늘도 그녀는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프랑크와 아내는 매번 같은 시간에 시내를 향하고, 번번이 늦거나 다음 날 도착하며, 그때마다 자동차 고장을 이유로 대지만 그는 그것을 믿는다. 때론는 온갖 변명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다양한 이유가 그들에게 존재했으리라고 생각하는 듯. 그러나 프랑크의 말이 늘 짜여진 각본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점점 그는 스스로를 속일 수 없게 될 것이다. 확인하는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진실을 말해줄테니까. 

보이지만 느껴지지 않는

세사람의 관계, 그들이 앉는 자리, 그들의 소소한 행적까지 모두 볼 수 있지만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다. 제목이 아니라면 남편이 질투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그는 아내를 구속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집에 남겨진 프랑크의 흔적을 지우거나 아내가 받거나, 쓴 편지지를 펼쳐 글자를 살피는 정도에서 편집증적인 그의 성격을 추측해볼 수는 있다. 아내가 프랑크에게 대하는 태도도 남편에게 보이는 모습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이 얼마나 깊은지, 그들의 성격이 어떠할지까지는 찾아내기 어렵다. 친절한 설명을 기대하기보다는 자세한 묘사의 끝을 기대하는 것이 이 소설을 읽을 때에 가장 필요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카메라기법이라고 하는 소설기법의 가장 극단을 본 듯 하다. 이렇게 한 권의 소설이 창작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다만 독자에게 약간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소설이라는 점은 참고해야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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