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레스따코프시치나(흘레스따꼬프주의)라는 말이 러시아에서는 자만이나 허풍의 동의어로 쓰인다고 한다. 이 말만으로도 검찰관이 얼마나 러시아에서 유명한 작품인지. 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말이 아닐까. 희곡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시골의 어느 작은 도시. 시장과 경찰, 병원과 교육감까지 모두 부패한 이 도시에 검찰관이 올 것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안그래도 찔리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때 마침 검찰관처럼 보이는 젊은이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제대로 판단하지도 못한채로 그를 검찰관이라고 생각하고, 시장과 이하 사람들은 모두 이 젊은이에게 잘 보여 그간의 부패를 덮을 수 있을까하며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다. 돈이 모두 떨어진 이 젊은이가 배고파서 쳐다보는 것을 그토록 오해하다니.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흘레스따꼬프는 이를 이용해 모두를 농락하며 시장의 딸에게 청혼까지 하게 되고 그가 유유히 돌아간 후에서야 마을 사람들은 그의 실체를 알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 울분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진짜 검찰관이 온다는 헌병의 외침소리에 모두들 굳은 채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사칭을 다룬 실화모음집을 읽은 기억이 난다. 사칭에는 대단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속아주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 사람들의 헛점을 이용하여 자신을 잘 포장하기만한다면 얼마간의 사칭은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이에게는 못할 일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검찰관에서 다루고 있는 사칭은 단순히 젊은이의 치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농락하는 이들 모두 그보다 더한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이용당하고 그가 대놓고 돈을 요구하며, 그의 거짓말에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하나도 불쌍하지 않다. 게다가 그에게 청원서를 넣었던 상인들 또한 재료비를 속여 이익을 남겨먹었다고 시장이 외치는 장면에 이르면. 대체 이 마을에 깨끗한 인물이 있기는 한 것인지 한심스러운 마음이 든다. 결국 이 희곡에는 긍정적인 인물이라고는 없는 것이다. 모두 자기 나름의 부패를 등에 짊어진 채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면 그것은 시골 마을의 풍경이 아니라. 지금 내가 발딛고 있는 이곳의 풍경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