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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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이름은 무겁다. 그가 가진 존재감이 너무도 무거웠기 때문에 나는 읽기 전부터 이 책의 두께와는 상관없이 무겁게 느꼈다. 아마도 시에 관한 진지한 대화가 주로 이어지거나, 아니면 정치적인 내용을 가득 담은 채 전개되는 음울한 바닷가의 서사를 읽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포스티노'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들었지만 그때도 역시 그런 영화는 내가 본다고 이해되는 게 아니야. 라고 도리질 먼저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줄 알았으면 영화 먼저 볼걸. 소설의 중반부에서 낄낄거리면서 맨 처음 든 생각이다. 

이슬라 네그라. 바닷가의 한 작은 마을. 어부들과 그에 빌붙어 사는 사람들의 공간. 여기에는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래서 우편배달부가 하는 주된 일은 바로 이 마을의 유일한 수신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매일같이 배달되는 수십통의 편지를 운반해다 주는 것이다. 어부로서의 삶에 취미없어하던 마리오는 그래서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이였다. 그는 아는지 모르겠으나 어부이기를 거부하고 빈둥대기 시작했던 그때부터 그의 시심은 자라났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빈둥댐이 시의 시작이었다기 보다는 주어진 삶에 대한 거부가 시의 시작이었다고 보는 게 더 적합할 것이다. 아무튼 그는 네루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의 약간은 냉랭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친근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말을 할 줄 모르고 수줍기만 했던 인물치고는 당돌하게 네루다 시인에게 들이대기도 한다. 결국 그는 네루다를 뚜쟁이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런. 뚜쟁이라니. 이 거물을. 정치인을. 시인을. 

한용운 시인의 시를 가지고 한 독일인이 청혼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용운 시인이 살아있어 그를 만날 수 있었다면 그 독일인은 아마도 내 결혼을 성사시켜준 은인이라며 크게 한 턱 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시는 그런 것. 우리는 사랑으로 가득차 있을 때 누구나 시인이 된다. 네루다에게 사랑은 여인에게도 있었지만 국가에도 있었기에 그리 흘렀을 뿐. 본질적으로 시는 사랑이 아니었던가. 온 마음이 그것으로 가득 차는 것을 사랑이라 부른다면, 시도 그렇게 온 마음 가득 차서 흘러나오게 하는 것일테니 그 둘은 서로 너무나 닮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리라. 

네루다는 서글프게 세상을 떠나고 마리오는 잡혀가 어찌 되었는지 모를지라도. 이렇게 이야기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지라도 우리는 그의 시에서 절망을 읽지 않듯. 이 소설에서도 불행을 읽지 않는다. 오히려 나아가야 할 희망적인 공간을 떠올린다. 그들이 이렇게 밝던 그들이 꿈꾸던 세상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남겨진 시들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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