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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스트리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2
V.S. 나이폴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평점 :
미겔 스트리트는 트리니다드의 수도 포트오브 스페인에서도 하층민이 사는 변두리지역이다. 중심이 아닌 주변이라는 것. 그리고 백인이 아닌 유색인이라는 것. 힘있는 국가가 아닌 가난한 국가라는 것. 이러한 조건들이 이 변두리 지역 사람들에게는 뿌리깊은 패배감과 무기력을 불러일으키는 원인들이다. 이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또는 떠나가는. 자라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미겔 스트리트라 할 수 있다. 연작 형태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들은 에피소드별로 한 인물의 특별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전체 이야기를 조합하면 미겔스트리트라는 공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형태로 진행된다.
우리는 왜 변두리에 주목하는가.
변두리라고 하면 생각나는 우리 소설이 있다. 바로 '원미동 사람들'이다. 이 소설에서도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연작 형태로 펼쳐진다.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이들은 중심을 갈망하기도 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내기도 하며 서로의 아픔에 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미겔 스트리트의 사람들 역시 그렇다. 그러나 미겔 스트리트의 서술자와 원미동 사람들의 서술자는 큰 차이가 있다. 원미동 사람들에서는 서술자 '나'는 왠지 주변인의 밖에 머무르는 것 같은 반면에, 미겔 스트리트의 서술자 '나'는 함께 뒹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요컨대 서술자 '나'는 미겔 스트리트의 일원으로서 그 공간이 갖는 답답함과 도덕적 퇴폐의 길을 함께 걸으며 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한 몫을 담당하는 인물같다. 작가 나이폴의 자전적 이야기라서도 그럴 것이고, 그가 그 공간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살아온 토박이이기 때문에 더덩구 그럴 것이다. 원미동은 중심에서 밀려나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미겔스트리트는 본래부터 그곳에서 뿌리내렸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갖는 패배감은 보다 더 뿌리깊고 한편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중심가가 아닌 변두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때로 우리는 평탄하지 않은 사람들의 성공담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런 성공담을 읽기는 쉽지 않다. 이 에피소드들은 모두 실패담이다. 무기력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무기력하게 지속하는 방법들이거나 혹은 무기력을 탈피하려다 어쩔수 없이 아예 떠나게 되거나. 그러나 이 실패담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들이 이렇게 사는 이유는 이렇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좌절 속에서도 삶은 유지된다.
보가트와 포포는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한번도 무언가를 만들어낸 일이 없다. 그들에게 있어 직업은 마치 자신을 꾸미는 장신구같다. 자기 앞에 붙여 놓아야 할 단어가 필요할 뿐. 그 단어에 걸맞는 행위는 불필요한 듯 보인다. B. 워즈워스 역시 시인이지만 자기의 말로 지어졌다고 하는 시들 이외에는 그럴듯한 작품이 없다. 바쿠 아저씨는 매번 새 차나 혹은 멀쩡한 차가 고장이라며 계속 고치고 있지만 그는 고친다는 행위 자체를 즐길 뿐 제대로 고쳐진 적이 없다. 이렇게 소모적인 하루하루가 미겔 스트리트 남성들의 단면이다. 그들의 감정 역시 소모적이다. 분노하면 폭력을 사용하고 지쳐서 감정을 쉬고, 다시 폭력을 사용하고. 아내에 대한 남편들의 태도는 대개 이런 식인데, 이것 역시 가난으로 인한 것으로 이해된다. 같은 아이 여덟이 있어도 혼자 벌어서 살아야 하는 로라의 양육과 남편이 제법 큰 돈을 벌어다 주는 중국인 메리의 양육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서술자가 간파하고. 그 이유를 경제력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력이지만, 그것을 열심히 일해서 벗어날 길이라곤 없으므로 결국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는 상태에 빠지게 한 것이다. 유일하게 경제력을 인정받는 에도스가 쓰레기 청소부인것을 생각하면 과연 이 동네에서 할 일이라곤 술마시는 것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이 간다.
"사람들은 모두 성장하고 있거나 떠나는군." p.269
작품 속의 인물들은 대개가 좌절을 겪은 후 떠나게 된다. 떠나지 않더라도 주인공인 '나'와의 친분을 끊어버리거나 아무도 근처에 오지 못하게 고립되어 버린다. 이들의 꿈틀거림이 좌절할 때마다. 주인공 역시 떠나고 싶다는 욕망을 키웠는지 모른다. 이대로 자란다면 이 무기력에 중독되어 버릴테니. 에드워드나 해트, 혹은 에레이라처럼 사랑에 목매다 상처받거나, 타이터스 호이트나 볼로처럼 얼토당토 않은 일에 모든 집중력을 쏟아부을지도 모른다. '나'의 어머니는 그래서 더욱 아들이 이곳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든 이들의 실패담중에서도 유일하게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그 마저 동생이 걸었던 가슴아픈 전철을 밟고 난 후. '나'는 미겔 스트리트를 떠난다. '나'는 이전처럼 사람들을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도, 그들과 같은 어른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다. 성장하고 떠나는 것은 아마 '나'에게 미겔 스트리트는 과연 '성장'의 공간이었을까. 아님 '떠남'의 공간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