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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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셸 투르니에를 처음 알게된 것은 그의 2002년작 외면일기를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그가 대단히 유명한 작가라는 사실도 그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여유가 나질 않았기 때문에 이제서야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 그의 첫번째 작품이자 그를 단번에 훌륭한 작가의 대열에 올려놓은 이 책. 방드르디를 말이다. 

방드르디는 프라이데이. 그러니까 금요일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그의 외로운 무인도생활을 함께보낸 흑인. 실제로 이 작품에서 그는 흑인보다 어쩌면 더 못한 혼혈인이다. 아무도 찾아온 적이 없는 그곳에 어떻게 혼혈이 생겼을까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아무튼 방드르디는 이 작품에서 로빈슨 크루소 못지않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다. 그는 로빈슨 크루소에게 그가 무인도 스페란차에 만들고자 했던 소영국의 모습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일깨워주며 문명에 대한 고찰. 또 인간에 대한 고찰을 보다 심화시켜준다. 그러나 그 자신은 화이트버드호가 스페란차에 도착해 잠깐동안 문명에 노출되었을 때 문명의 세계로 떠나버리고 만다. 스페란차에서 동물과 함께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해져서 충분히 만족하고 살았을법한 그가 문명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그 역시 로빈슨 크루소에 의해 변화를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운명. 혹은 선택. 

처음부터 로빈슨 크루소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그가 중갑판에 들어가 있었던 것은 그의 신중한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고. 그 때문에 버지니아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도 그의 선택은 아니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는 영국인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생활. 문명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늙어가는 생활을 선택했을 것이다. 운명은 그를 야만으로 보냈고. 그는 28년간을 야만속에서 문명을 만들어보고자 노력하다, 또 그 문명을 파괴하고 야만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겪어야했다. 그의 운명이었으니 다른 이들에게도 운명이어야 할텐데 방드르디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가 운명적으로 스페란차에서 살아냈고, 그래서 방드르디를 우연찮게 구해주기도 했지만 사실 방드르디의 운명은 이변이 없는 한 스페란차에서의 야만적 생활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마지막에 스페란차에 남게되는 죄디는 문명에서 살게 운명지어진 소년이었다. 그 역시 로빈슨이 없었다면 절대로 스페란차에 남으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로빈슨을 만났고 그리고 서로 다르긴 하지만 그로 인한 선택을 했다. 한 사람은 떠나고 한 사람은 남는. 

늙은이는 지난 세월을 운명이라 말하고. 결국 그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젊은이는 선택하고 살기를 원하고 때로 실수라 하더라도 자신의 선택을 과감하게 실행한다. 그리고 언젠가 미래에 그들은 늙어지면 다시 그들의 선택은 운명이었다고 누군가가 그렇게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버렸다고 말할런지 모른다. 우리의 삶은 운명인걸까. 선택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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