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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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만일 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뿌리를 떠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불가능하지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 저곳으로 불어댈 뿐이지." p.79

크눌프라는 사람을 정의하려면 이 부분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자기 자리에 붙박혀 있어야 하는 꽃보다는 바람을 택한 영혼이라고. 대신에 뿌리를 떠나야 했고, 자신의 고유의 향기를 지니는 일도 불가능했다고. 그는 떠돌이 인생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신사적인 태도와 교양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아마도 매우 훌륭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의사인 그의 친구가 말했듯이 좋은 곳만 여행하고 다녔던 사람에게 걸린 병 치고는 아이러니하게도 폐렴에 걸려 그의 삶을 마감하고 만다. 

모두가 그에게 말했다. 네가 우리처럼 살았더라면 훨씬 더 좋은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라고. 또 한 친구는 그가 그의 재능을 그대로 썩혀 버린 것은 자신만을 위해서 산 결과이며,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는 손해를 입힌 것과 마찬가지라고 제법 진지하게 충고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역시 삶의 마지막에 자신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신에게 묻게된다. 

어떤 삶이 바람직한 것일까. 우리는 꽃처럼 붙박혀 살면서 바람이 되기를 꿈꾸지 않던가. 그렇다면 바람이 있기 때문에 꽃들은 꿈꿀 무언가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또 씨앗을 적당한 자리에 뿌려주는 일도 바람이 하는 것일테니 바람과 같은 사람도 어쩌면 필요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그네가 나그네 된 이유는 주인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걸까. 헤세가 사랑했던 주인공. 크눌프. 그가 누워있을 눈밭을 찾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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