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의 발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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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가지 사건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여기에 등장한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필명이 바로 이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이름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아마 책에 대해 해설한 부분을 읽어보는 편이기 때문에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이름들은 아무래도 너무 낯설어서 외우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단순한 줄거리지만 사정이 꽤 복잡해서 한 가지 이야기로 읽기가 어려운 글이었다. 어떤 잘못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무언가 죄를 짓고 쫓기고 있는 인물인 '나'는 빌링스라는 섬에 숨게된다. 이곳은 누군가가 박물관과 수영장, 예배당들을 지어놓은 상태에서 무슨 이유론지 버려진 무인도이다. 무인도라는 것을 확인하고 섬에서 살게 된 그는 여러 사람들이 몇 년 전 유행하는 옷을 입고 섬에서 매일매일 춤을 추거나 노래를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한다. 숨어사는 인물 치고는 대담하게도 그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만큼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그들 중 한 여인인 포스틴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지만 모두는 그를 볼 수 없는 듯이 행동하거나 무시한다. 이 묘한 일들의 원인은 바로 이들이 환상이라는 데 있다. 

처음부분에서는 사실 이들이 환상인지, 아니면 여기에서 혼자 살아있다고 믿는 서술자 '나'가 환상인지 명확하지 않다. 즉 서로가 서로를 귀신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의심은 마지막까지 유효하다. 왜냐하면 '나'에 의한 서술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가 환상일 가능성이 배제된 것일 뿐. 진실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모렐의 기계를 '나'가 발견했다는 부분을 고려한다면 다른 이들이 환영일 가능성이 높을 수 있겠지만.

'나'가 자신이 사기성이 짙은 사람이라고 발언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 전부 그의 꾸밈일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나'는 자기가 작가라고 말하고 있고, 모렐이라는 인물은 테니스선수라고 말하고 있다. 거대한 발명품의 제작자가 고작 테니스선수라니. 이 직업의 묘한 불균형은 독자가 그의 이야기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장치이다. 

한편으로는 이 소설이 말하고자하는 영원성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들 모두가 서술된 대로 일주일의 삶을 기록해놓고, 그 삶이 영원히 반복되도록 만들어놓은 뒤 죽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이들의 환상이 반복되는 것이 과연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켜보는 이가 그들을 전혀 모르는 제 3자라고 할지라도. 아니라면 이 제 3자조차 이들의 삶에 동화되기 위해 자신의 환영을 기록해 두었으니 이렇게 삶이 영원히 유지되고 덧붙여진다고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망이 확장되는. 정말 독특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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