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잡아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십사세. 아이를 둘 뒀지만 아내와의 이혼하기위해 집을 나온 남자. 직장에서 한때 한 구역을 담당하는 인물이었지만 부사장 자리를 약속받았다가 이것이 불가능하게되자 관두고 나와 이제는 글로리아나 호텔에서 도박으로 잃은 대부분의 돈을 아쉬워하며 마지막 700달러를 주식에 쏟아부은.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실패한 인생의 어느 지점에 위치한 남자. 윌헬름의 하루를 그린 이야기다. 

그에게 오늘이 과연 잡을 만한 가치가 있는 날일까. 그의 아버지 애들러박사는 그와는 달리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젊을 때 의사로서 이름을 날렸고 나이들어서까지도 그의 명성과 그에 대한 존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글로리아나 호텔에서 유명인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아들을 그대로 받아들일만한 포용력이 없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윌헬름은 아버지에게 위로와 따뜻한 격려를 바랐으나 그의 아버지에게는 그런 미덕은 애초에 없었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윌헬름의 몫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 애들러는 그에게 이미 많이 실망했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결혼을 했고, 그 결혼에 실패했다. 헤어지지 말라는 말을 어기고 헤어졌다. 대학을 다닐 때에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중퇴해버렸으며, 이제는 직장까지 나와버렸다. 아내에게 돌아가라는 충고도. 탬킨박사같은 위험한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경고도 아들은 무시했다. 아버지가 위로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반항심이었을까.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인물이었어도 아버지는 그랬을까. 

탬킨박사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는 심리학자로 그려지고 있지만 진정한 그의 모습은 심리학자라기보다는 소설가에 가깝다. 그의 이야기를 윌헬름은 '지어낸 이야기'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윌헬름은 그가 진심을 갖고 있지도 않고 또한 위험하기도 하며 어쩌면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계속 끌려간다. 그가 지어낸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면은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그가 자신의 삶을 위험에서 건져냈던 것처럼 윌헬름의 지금을 건져낼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어한다. 잃는 도박임을 알면서도 자꾸만 돈을 거는 행위와 한편으로는 동일한 심리처럼 보인다. 탬킨이 아버지가 해줄 수 있었던 위로와 격려.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랬을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가 가지고 도망가버린. 윌헬름의 마지막 재산 700달러는 사기맞은 것이 아니라 비싼 수업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탬킨은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가져갔을 것이다. 사기꾼들은 적어도 자기 생각에 합당한 사기의 이유를 하나쯤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 

마흔넷. 이제 인생을 새롭게 배우기에는 조금 늦은 나이. 그러나 그는 자기의 마지막 재산을 잃어버린 그 순간에 전과 달라졌음은 분명하다. 그가 잡았어야 할 수많은 오늘들. 그 오늘을 미처 살아내지 못한 죽은 이의 앞에서 흘린 눈물은 그 오늘에 바쳐진 것일 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