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3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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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 부인의 몸짓에서 이 소설은 탄생한다. 얼굴은 그 개인의 고유한 것이지만 몸짓은 개인이 가지는 고유한 영역이 아니라는 점. 그러나 어떤 몸짓은 그 주인의 이미지를 규정한다는 점. 하지만 그 몸짓을 다른 이에게서도 여전히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개인이 몸짓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몸짓이 개인들을 거느리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 이런 점들은 노부인의 몸짓을 그녀 고유의 것으로 갖고 있었던 한 여인 아녜스를 탄생시켰다. 

아녜스는 일탈을 꿈꾼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자유를 꿈꿀 가능성을 품게 해 줄만큼 여유있는 돈을 남겨주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사랑한다. 딸도 있다. 가족에게 아무런 불만은 없지만 가끔 그녀는 그녀만의 공간을 원한다. 사람들 틈에 끼어 있지 않아도 되는 곳. 온전히 그녀 하나로 가득 채워진 공간. 로라가 사람들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불멸을 꿈꾸었다면 아녜스는 사람들이 없는 공간에서 완전한 존재가 되는 불멸을 꿈꾼 것은 아닐까. 

이야기는 베티나와 괴테에게로 넘어간다. 불멸이 보장된 사내 괴테를 통해 자신의 불멸을 꿈꿨던 여인 베티나. 진실이 무엇이던간데 베티나는 불멸에 성공했다. 그녀는 괴테의 연인으로 남았다. 괴테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의 연인 베티나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작가가 마지막 노년에 불태웠던 사랑의 대상을 어찌 사람들이 잊을 수 있겠는가. 설사 그녀를 피하기 위해 괴테가 그토록 노력했다고 할지라도, 베티나가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의 사랑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녀는 어느 면에서 괴테보다 더 노련한 작가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직접 지어냈다. 

소설속의 소설이라고 작가가 말했듯이 작가는 소설의 탄생과정부터 진행과정을 모두 보여준다. 작가가 어느 노부인의 몸짓을 발견한 것에서 시작한 자기 경험의 토로로 시작하여 잠결에 들은 뉴스의 내용. 어느 소녀가 도로 위에 자살을 목적으로 웅크리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그 소녀를 제외하고 그 도로위를 질주하던 자가용 운전자들이 사망하거나 다쳤다는 소식. 베티나의 불멸을 향한 욕구와 그녀가 천진함을 가장하여 괴테의 무릎에 앉았던 일화는 로라가 그의 형부인 폴의 무릎에 앉는 것으로 대체된다. 소설이 그 작가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작가는 그가 경험하는 세계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 이보다 더 잘 설명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친구인 아베나리우스 교수를 만난다. 이 인물은 꽤나 독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아녜스의 동생 로라와 아는 사이이며 아녜스의 남편 폴의 변호를 받은 적이 있다. 아베나리우스 교수는 작가와 등장인물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게다가 그는 단순히 다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가 밤이면 식칼을 차고 타이어에 구멍을 내고 다녔기 때문에 폴은 그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의 자동차 역시 교수에 의해 펑크가 나 버렸기 때문에 아내 아녜스가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빨리 가고 싶었지만 15분 지각하게 된다. (그는 이 펑크로 30분을 허비했다.) 그는 등장인물이면서 실존인물처럼 보이지만 서술자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이 책은 매우 다양한 면에서 즐거움을 준다. 이야기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그 독특한 구성이 주는 즐거움. 역사속의 인물의 내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즐거움. 삶에서의 에피소드가 소설에서의 에피소드로 탈바꿈하는 즐거움. 등등. 밀란 쿤데라에게 자꾸만 빠져드는 이유는 이렇게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즐거움을 이끌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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