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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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닐 자신의 이야기를 쓴 자전적 글이다. 자신이 죽은 후 이십오년간은 작품을 발표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그가 가슴아파했던 이야기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가족들에게조차 돈을 아끼는 구두쇠 아버지와 그 때문에 마약중독자가 된 어머니, 알코올 중독 수준에다 창녀들과 어울리는 데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형과 함께 살아야했다면 끔찍한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을 읽어보면 이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또 가족이기 때문에 한편으로 증오하는 모습이 어쩌면 저렇게 이해될 수 있을까 싶게 이해된다. 

아버지 제임스는 배우였다. 그는 자신이 돈 때문에 삼류배우로 전락해 버린 사실을 가슴아파하지만 자신도 자신의 기질을 어쩔 수 없어 괴로워한다. 부동산에 집착하고 늙어서 양로원에서 살다 죽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살아온 과거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 남매와 어머니를 두고 고향에 돌아가 죽어버린 아버지 때문에 가장의 짐을 져야 했던 그는 1달러가 온 식구를 먹여살리는 돈이 되는 경험을 했다. 그의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시절은 그에게 돈을 쓰는 일이 두렵도록 가르쳤다. 뼛속까지 익힌 그 두려움 때문에 제임스는 그의 아내 메리가 통증으로 괴로워할 때 단순하게 모르핀을 처방해버리는 돌팔이 의사에게 맡기는 실수를 하게 되었고, 그러고 나서도 여전히 좋은 의사에게 식구들을 보일 생각 따위는 못하는 노랭이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그는 스스로 자신에게 위로했을 것이다. 그 의사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 줄 몰랐다고. 아들 에드먼드를 살피는 하디의사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은 그저 편견일 뿐이라고. 그가 값이 싸기 때문에 돌팔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그는 그렇게 자라온 사람이다. 그래서 에드먼드는 그에게 반항하고 그를 비난하면서도 결국 그를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머니 메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에드먼드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를 낳는 일이 그녀에게 두려움이었기 때문에 그가 아프다는 소식에 두려운 것이다. 낳지 말았어야 할 아이를 낳았다는 생각. 그 전에 자신의 불찰로 죽인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그녀를 옥죄었다. 그녀에게는 안정된 집. 가정이 필요했지만 남편은 그녀에게 그것을 제공해주지 않았다. 그녀의 마약중독은 그녀 자신의 자제력에만 호소해서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이었다. 그녀는 마약이 필요한 삶을 살고 있었다. 때문에 어머니역시 에드먼드가 비난할 수 없는 대상이다. 그녀는 그의 눈에 가장 불쌍한 피해자였을 테니까.

그래서 형은 그에게 친구이자 숭배해야할 대상이었다. 이미 제이미는 동생 유진에게 홍역을 옮겨 죽게 한 전적이 있었다. 열 살 난 그 때의 그가 과연 알고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도 죄책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부모는 그가 그러한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배려하는 방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에드먼드에게 취해서 한 고백은 그래서 유의미하다. 그는 스스로의 어느 한 부분이 동생이 죽었으면 바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형제는 가장 최초의 살해대상이었으니까. 형제간의 질투는 아주 태초부터 살인을 동반했으니까. 

실제로 작가 유진 오닐은 셋째였다. 죽은 둘째 형의 이름이 에드먼드였다. 그러니 이 이야기에서 죽은 유진과 에드먼드의 이름만 바꾼다면 그의 실제 삶에서의 한 부분을 그대로 재현한 것일 터이다. 작가가 자신의 삶의 부분을 사람들 앞에 드러낸다고 하는 것은 그 사실이 치명적일수록 두려운 일일 것이다. 그가 그 사실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삶의 질곡을 호소하고자 함이었을까. 아니면 이야기의 모든 부분. 모든 시선에서 느껴지는 그의 가족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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