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스케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2
도리스 레싱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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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는 잘 짜여진 그림이라기 보다는 인상이다. 색을 덧입히기 전의 상태. 표현하고자하는 내용만 간략하게 들어있거나 또는 색을 입히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면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그림. 런던스케치는 딱 그런 그림을 상상하면 된다. 런던의 하루하루를 때로는 스쳐지나가는 지하철에서의 사람들의 모습이, 카페의 한 구석에 앉은 부부의 모습, 가족의 모습. 그리고 나이든 이들의 모습과 젊은 이들의 모습이 지나가는대로 휙휙 스케치 되어 있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읽은 후에 읽게 된 작품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녀가 '가족'이라는 테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근간을 이루는 남녀 간의 사랑부터 시작해서. 그녀가 말하는 남녀간의 살은 단순히 사랑이 아니라 가족을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이루기에 적합한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았다면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함께 살기 힘들도록 만들었는가.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중요한 아이들에 대한 시각도 매우 깊이있다. 부모라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일탈은 그녀의 필체에서는 매우 현실적이고 진지하다. 아이가 자립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를 감싸주고 싶어하는 어머니. 부모의 지나친 이론적 배려 때문에 오히려 화가 나는 자식의 모습. 어린 나이에 출산을 하고서 아무렇지 않게 집에 돌아왔지만, 결국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보다 성숙하게 꾸려가겠다고 결심하는 소녀의 모습. 이러한 모습들은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아! 이 부분의 이 장면을 향해서 이야기가 달려왔구나를 느끼게 해준다. 

도리스 레싱과 함께 런던을 거닐어보자. 그녀가 스케치한 그림들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을 같이 들여다보자. 그러면 그림으로부터 시대의 모습이. 또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 우리와 함께 걸어다닐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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