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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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이야기가 생각난다. 버려진 딸이 결국 그 부모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위험을 불사하는 이야기. 지극 정성으로 길렀던 여섯 딸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데도 눈하나 깜짝 않는다.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그들은 자신에게 위험한 일을 하길 거부한다. 망연자실한 부모의 앞에 나타난 버려진 딸 바리데기. 남녀의 사랑과 달리 부모를 섬기는 사랑은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된다. 

코딜리아는 리어왕의 '즐거움'이었다. 노년의 리어왕은 그녀와 함께하는 휴식을 꿈꿨을 것이다. 평소에 보여주었던 코딜리아의 사랑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의 국가를 나눠주기 직전 마치 의식을 치르듯 세 딸들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을 말하라고 한다. 두 언니들이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했던 반면 코딜리아는 '없습니다'라고 한다. 덧붙인 말에서도 그녀는 자신은 부모를 섬기는 그 원칙에서 덜도 아닌 사랑을 하며 자신의 남편은 자기의 의무를 반을 져야하고, 남편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진실이라기보다는 '진리'에 가깝다. 딸로서 남편과 부모를 섬기고 사랑하는 데에 필요한 '진리'. 딸이 부모를 떠나 남편과 한 가정을 이루어서 살면서 남편보다 아버지에게 집착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데다(두 언니처럼) 사실이라고 한다면 옳지 않은 일이다. 그녀가 말했듯이 그럴 거라면 남편을 갖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부모 역시 이 이상을 요구할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딸을 시집보내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이치가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당연한 이치를 말하는 그녀가 리어왕은 불쾌하다. 모든 이들에게 원하는 답을 들어오던 그에게 사랑하는 막내딸이 원치 않는 대답을 해버렸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원하는 대답을 해 줄것이라고 여겼던 딸이. 

비극은 이렇게 시작된다. 코딜리아를 추방한 리어는 얼마 안 있어 두 딸들에게 무시를 받고 괴로움에 미치광이가 되고, 아버지에게 불손했던 딸들은 남편에게 역시 불손하여 교활한 남자 에드먼드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 서로를 죽이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아버지를 구해내려 했던 코딜리아 역시 에드먼드의 명령에 따라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한 왕가가 이렇듯 쉽게 무너져 버릴 수 있을까 싶을만큼 이들의 죽음은 단순하고 안타깝다. 왕의 권력을 지닌 채 오랜 세월 나라를 다스렸던 그가 자기 딸들의 진심 하나를 몰랐다는 게, 그들의 품에서 안락하게 노년을 보내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이룰 수는 없었던 운명이었다는 게 왕권의 추락보다 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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