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들으면서 늘 궁금해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 전에 그의 소망없는 불행을 먼저 읽게 되었고, 그 작품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바로 관객모독이라는 연극을 가능하게 만든 인물이라는 것을 그 때에서야 알게 되었다. 사실 언어보다 스토리에 집중하는 나에게는 어려운 작가일 수밖에 형식이나 사실보다 '언어'라니. ㅡㅡ; 소망 없는 불행이 그의 자전적인 삶을 객관적으로 그려낸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었다면 이 작품은 그의 소설에 대한 생각을 알게 해 주는 작품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블로흐는 유명한 골키퍼였으나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다 해고된다. 그러나 이 '해고'는 매우 석연찮은 점이 많다. 이는 '언어'로 통보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흘끗 올려다보는 시선을 블로흐가 '해고'로 해석한 것 뿐이다. '해고'는 '몸짓'으로 통보되었으나 '언어'로 통보된 것 만큼이나 그에게는 확실한 것이었다. 그가 이를 해고로 이해했음에도 말리지 않은 현장감독의 모습으로 보아 적어도 그의 해고를 막을만한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마치 골키퍼였던 시절에 공이 라인 위로 들어가는 것을 우두커니 지켜봐야 했던 때와 같은 무기력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가 일터로부터 밀려나와 거리를 배회하는 동안 아무도 그에게 집중하지 않는다. 골키퍼가 주목받는 순간은 골이 들어가기 직전. 뿐이다. 골이 들어간 이후에도 게임이 재개되면 골키퍼는 다시 소외된다. 세상 속에서의 그의 모습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만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가 매표원을 죽이고 떠난 국경선 근처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 주변의 사물들이 흐리게 느껴지는 것처럼. 아이의 모습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의 존재도 세상이 잘 돌아가는 순간에는 흐릿해져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살인이 밝혀지는 순간에 망연자실하게 골이 들어가는 순간에 골키퍼 그의 존재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그리고 다시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는 곧 잊혀질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이러한 삶은 우리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세상에서 돌아가는 일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일이 우리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런지. 일에서 밀려 나온 이후에 생긴 불안감이 우리 나머지 생활을 지배하는 것 역시 우리 삶의 모습은 아닐런지. 그래서 누구나 이러한 골키퍼의 불안을 갖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