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은 고전중의 고전이다. 어린 시절에는 옛 이야기를 읽듯이 읽었고, 또 학창 시절에는 판소리로, 또 소설로 공부하면서 읽어 보았을 것이다. 춘향전은 판소리계 소설이 그렇듯 이본이 많은 편이고, 또 이후 다양한 작품으로 개작되어 등장할만큼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좋은 텍스트이다. 최근에는 춘향전에서 영감을 얻어 전혀 다른 작품으로 탄생한 영화 방자전이 개봉되기도 하였다. 사실 춘향전을 읽어보았다고 하더라도 작품 속에서 춘향이가 어떻게 다르게 드러나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열녀춘향수절가 완판본과 춘향전 경판본을 함께 실어놓은 민음사의 춘향전은 의미있는 책읽기가 될 수 있다.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는 판소리로 불려졌다는 특성 때문에 말하기 좋은 문체로 쓰여있을 뿐 아니라 시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별춘향전 계열이 거듭 개작되면서 완성되었기 때문인지 내용도 매우 복잡하고 길다. 묘사도 자세하다. 춘향이의 탄생부터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수절가가 오히려 춘향전보다 더 '전'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두 작품에서 다른 점은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이다. 수절가에서 몽룡은 아버지에게는 춘향이에 대한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혼만 난 채로 춘향이에게 이별을 고한다. 처음에 같은 이유로 월매가 둘의 사이를 반대했을 때는 제법 어른스러웠던 몽룡이 떠날때의 모습을 보면 철부지 소년이 따로 없다. '어른들이 하면 안된대'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춘향이의 태도도 역시 다르다. 수절가의 춘향이는 애원하고 매달리고 실신한다. 하지만 춘향전에서의 춘향이는 제법 어른스럽다. 반대로 춘향이에서 몽룡이는 부모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수절가의 춘향이와 몽룡이가 더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걱정하던 그 일이 마침내 벌어졌는데 태연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기생의 딸이지만 도도하게 살아왔던 춘향이가 우려했던 대로 버림받은 신세가 될 판인데, 부모님이 혼내서 따라 올라가야 한다는 남자를 믿고 기다리는 일이 쉽지 않을 뿐더러, 온다는 약속 또한 뭐라고 믿는단 말인가. 게다가 아버지 따라 내려온 철부지 도령이 기생 하나 홀리다가 다시 한양가버리는 일은 조선시대 비일비재한 일이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춘향이는 절개를 지켰다. 좀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춘향이는 매를 맞아가면서도 하나 둘에 맞추어 구구절절 자신의 의견을 내비친다. 춘향이가 사또의 수청을 들지 않은 표면적인 이유는 이몽룡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춘향이가 사또의 수청을 드는 순간. 그녀는 기생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기생으로 평생을 살 것이냐, 한 남자의 아내된 도리를 지키다 열녀로 죽을 것이냐. 춘향의 삶의 기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싶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로지 사랑때문에 죽음을 선택했지만, 춘향의 죽음은 오로지 사랑때문만이 아니라 자기의 미래와 명예가 달린 문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때문에 아파하는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나타난다. 놀라운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보다 춘향과 몽룡이의 사랑이 훨씬 더 현실감이 넘친다는 점이다. 사랑에 빠지는 방식이나 사랑한 이후에 나오는 행동들이 더 과감한 쪽은 로미오쪽보다는 춘향이 쪽이 더하다. 애정 표현에 과감했던 것은 서양보다는 우리쪽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춘향전의 춘향이는 좀 더 점잖다. 간단히 기술된 부분이 많아서이기는 할 테지만. 아무래도 나는 수절가에서의 춘향이 쪽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