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과 다른 사람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4
세스 노터봄 지음, 지명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중국인 소녀를 찾아 곳곳을 헤맸지만 그녀를 놓쳐 버린 나, 그녀를 찾아 헤매지 않았지만 대신 나를 만나고 맞이해 준 그들. 그들은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었고, 나는 유유자적한 삶을 살며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 깊이 사유하기를 갈망했다." p.130

 

태어나면서부터 너무 늙어버린 남자. 필립.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었던 소년. 그리고 청년. 미리 나이들었다고 말하지만 그 순진함이 때로는 덜 자란 어른같기도 한 인물이다. 필립의 이야기는 그의 삼촌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삼촌은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사람이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필립의 물음에 자기 자신과 결혼했다고 말한다. 아니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이 되어버린 추억과 결혼해 살고 있다고. 벽에 걸린 그림들을 실제 사람처럼 대하는 데다, 한 때 잠깐 스친 인연일 뿐이었던 인도네시아 소년과의 추억을 곱게 간직하고 살아가는 삼촌. 필립은 자연스럽게 그의 추억을 이해하고 또 자연스럽게 그가 이끄는대로 벽에 있는 인물들과 인사한다. 그는 의문을 가지기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의 받아들임의 자세. 그것이 모두가 그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만든 원동력은 아닐까.

 

필립은 길 위에 있다. 그는 삼촌을 떠나 여행을 하는 중이었고, 여행중에 만나게 된 중국인 소녀를 찾아 계속 방랑생활을 하게 된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녀와 얼굴을 맞댄 시간은 1분도 채 안된다. 그녀는 그 자체가 찾으려는 대상이기도 하고, 또 그녀를 찾아가는 길 자체가 그녀이기도 하다.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가 발길 닿는 대로 가더라도 찾을 확률은 반반이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기 때문에 찾을 확률이 50%나 생기는 아이러니.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은 기록되지만, 정작 찾아다니는 중국인 소녀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 아이러니.

 

필립과 함께 떠나는 길은 이야기의 길이다.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그가 찾는 소녀와의 이야기들과 그 자신의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정지해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정지해 있지 않은 필립은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자기의 이야기를 만든다.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렇게 정지해 있지 않은 방랑자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들의 사이를 끊임없이 배회하는. 그리고 정말 만나고 싶어하는 그 하나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애쓰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