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작품이지만 천천히 읽어 본 적이 없는 작품이다. 햄릿의 인물형이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왠지 미뤄두게 되었달까. 고뇌하는 햄릿의 이미지와 그의 사랑 때문에 광기에 자살을 감행한 오필리아의 이야기는 내게 그다지 땡기는(?) 줄거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햄릿을 한번 읽어볼까 생각했던 게 대학때 강의를 듣다가 러시아에서는 초등학생들도 햄릿을 즐긴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 였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도 당장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에 이미 의심을 품고 있었다. 왕비는 그런 아들에게 어째서 죽음을 의문스러워하느냐고 묻는다. 유령이 나타나 아버지의 죽음이 독살에 의한 것이라고 말해주기 전까지 햄릿은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또 어머니가 그토록 사랑하던 아버지를 배신하고 금세 새 남편을(그것도 왕의 동생을) 맞이한 것 때문에 슬퍼하고는 있었지만 그러한 내색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운명을 그냥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령이 나타나 그의 평온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여지없이 무너뜨려 버린다. 유령은 비명횡사한 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얼마나 처참하게 죽었는지를. 그리고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고난을 당하고 있음을. 아버지를 사랑했다면 복수하라. 그것이 유령의 명령이었다. 복수는 생각보다 더디게 이뤄졌다. 그리고 실은 햄릿의 광기가 과연 복수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햄릿의 광기는 그의 의도를 감추는 데에만 유용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감춰왔던 의도는 애꿎은 폴로니어스만을 죽인 채 영국행 배에 햄릿을 태워버리는 효과만 가져왔다. 영국행 배에서 햄릿은 그간의 모습과 달느 결단력을 보이고 돌아와서 사랑했던 여인 오필리아가 죽었음을 확인한다. 복수의 대상만을 제외한 채 다른 생명들을 이미 넷이나 죽게 한(폴로니어스와 오필리아, 영국행 배에서 그가 조작한 편지를 전해서 죽었을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까지 포함하여) 햄릿은 레어티즈에게 그 모든 것은 광기에서 비롯되었으며 자신도 그의 피해자라고 말한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햄릿의 괴로운 심정을 대변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는 사실을 알고 미치지 않을수도 없었고 완전히 미쳐버릴수도 없었다. 결국 그의 이 있음과 없음의 고뇌는 네명의 생명에 더해 그 자신의 생명과 레어티즈, 왕비와 왕의 생명까지 빼앗아 간 후 멈추게 된다. 유령의 출현이 가져온 비극이라고 해야할까. 형을 죽인 동생이 가져온 비극이라고 해야할까. 햄릿의 망설임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가 망설인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의 지위와 그가 복수하려는 대상의 지위가 그를 망설이게 했을 것이고, 또 일의 중요함을 따져 보면 그가 충분히 다양한 방법으로 사실 확인을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여인 오필리아에 대해서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겠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는 클로디어스의 충실한 부하였으니. 이 전 가족의 죽음은 모난 놈 옆에 있다 정맞는다 정도로 표현되어야 할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