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선 1 한국단편문학선 1
김동인 외 지음, 이남호 엮음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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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감자부터 염상섭의 두 파산까지 한국 단편 문학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김동인의 감자는 꽤나 오랜만에 만난 작품이었다. 고등학생 때 읽고 복녀의 처지에 대해 안타까워했던 감상문을 적어 낸 기억이 있다. 그녀의 도덕성이라는 것이 그토록 손쉽게 바래지는 것에 대해, 또 그녀의 삶의 가치가 그토록 가볍게 처리되는 것에 대해 또 한번 안타까워하며 작품을 읽었다.

 

발가락이 닮았다 역시 제목만으로도 매우 유명한 작품인데, 실제로 m군의 처지가 불쌍하기는 하지만 한편 그의 업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는 남자의 입장에서 친구가 불쌍했을지 모르지만. ^^; 빈처와 운수좋은 날은 가난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예술가의 아내로 산다는 허울만 있을 뿐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때로는 절망에, 때로는 희망에 손가락을 갖다 대 보는 두 부부의 애정과, 지독히도 운이 좋았던 어느 날 자꾸만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미뤄야 하는 김첨지의 불안감은 갑자기 생겨난 행복이 엄청난 불행의 전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의 슬픔인 것만 같다.

 

이광수은 병감에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소한 죄목으로 들어와 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병감에 있기는 하지만 보살핌을 받는다기 보다는 격리된 이들인데다, 식탐과 서로에 대한 미움밖에 없는 사람들의 덧없음이란. 이상이나 희망이 들어차지 못한 곳이 감옥이어서일까, 게다가 병까지 앓는 신세여서일까. 이들의 대화는 어딘지 쓸쓸하고 갑갑하다.

 

물레방아와 홍염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설움이 폭력으로 실현된 경우다. 울분을 참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방법인지 모를 폭력은 읽는 이들에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한편으로는 시원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반면, 채만식의 맹순사와 치숙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풍자하고 있다. 살인범이 정식 순사가 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어도 자신은 청렴하다 생각했던 맹순사가 하는 솔직한 발언은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꽤나 설득력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효석의 산은 모밀꽃 필 무렵에서 느껴졌던 서정성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이효석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경 묘사의 향연이라고 해야할까. 산 속에서 그대로 산처럼 살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모밀꽃 필 무렵의 동이의 등짝처럼 푸근하게 느껴지는 글이었다.

 

이태준의 밤길과 토끼 이야기는 삶의 고달픔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열심히 돈을 벌어 가족에게 돌아가려 했으나 비가 추적추적 계속 되는 바람에 돈을 벌 기회도 놓치고, 설상가상 백일된 아기를 버리고 간 아내 때문에 결국 그 아이를 밤길에 빗물 스며드는 구덩이를 파고 묻어야 하는 슬픔이며, 소일거리로 토끼를 기르려다가 토끼 때문에 생활을 잃게 되자 피를 보지 못하던, 게다가 임신까지 한 아내가 열 손가락에 피를 묻혀가며 토끼를 죽이게 되는 상황을 가져온 고단함.

 

정비석의 성황당은 순이와 현보의 순수한 애정과 성황당에 대한 순이의 순박한 믿음이 따뜻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이후 둘의 삶이 평탄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의 마지막 모습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이 이들이 굳은 애정으로 살아갈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염상섭의 임종과 두 파산은 어쩌면 이 시대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사람의 죽음을 놓고 죽을 사람의 입장보다는 산 사람의 생계와 체면이 더 중한 우리들의 모습이, 또는 돈 때문에 정서를 잃은 채로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진정 파산인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과거의 작품이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것은 그 과거가 바로 우리들의 과거이며 때로 보편적인 과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밟아 온 자취에서 길의 시작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단편 문학을 읽으면서 우리 작품들이 걸어 온 길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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