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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문학선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
김동리 외 지음, 이남호 엮음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전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 작품들의 모음이다. 전쟁은 육체적인 상처 뿐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도 크게 남겼다. 국가간의 전쟁이 아니었고, 민족간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아마도 전후 문학에 이러한 상처들이 반영되었고, 그래서 때로는 파괴적인 모습과 인간이되 인간이지 못하게 살아가야하는 슬픔이 진하게 드러나 있다. 김동리의 까치 소리 손창섭의 혈서, 장용학의 비인탄생, 서기원의 암사지도 등은 그러한 작품 군이다. 20년대의 가난이 생활고와 삶의 어려움으로 드러났다면, 전후의 가난함은 그저 가난함이 아니라 인간성의 상실을 가져온 가난함이다. 굶어서 배고픈 것이 전부가 아니라 정신마저도 피폐해서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것으로 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우울함이다.
반면, 지역적인 특성이 두드러지는 소설들도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순순히 받아들인 삶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기꺼운 삶은 아니었기에 때로는 울분을 토해내기도 하고 또 일탈을 꿈꾸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자신이 태어난 고장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그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숙명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전황당인보기는 나에게는 좀 생소한 작품이었는데, 읽으면서 주인공에게 짠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때 가까웠던 친구에게 소중한 선물을 해주고자 했던 주인공 수하인은 그 선물을 건네러 간 자리에서도, 그리고 선물 그 자체로도 전혀 기쁨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변해서라기 보다는 세상이, 또 친구가 변해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벼슬한 친구를 축하해 주고 싶었지만, 온갖 청탁에 시달리던 친구와 그의 아내는 그를 그닥 반겨하지 않는다. 그가 운 좋게 얻어 성실하게 만든 도장은 한순간 도장방으로 흘러들어가 버린다. 우리의 소중한 정이 그렇게 쉽사리 값을 쳐서 팔려버리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만 같아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가 친구에게서 버림받은 듯한 느낌을 받고는 도장을 파기 힘들어졌듯이, 우리 사회에 장인들이 사라지게 된 배후에는 그런 상실의 아픔이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