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들이 떴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0
양호문 지음 / 비룡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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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쳐야 산다.





재웅이는 친구들을 내려다보았다. 어두컴컴한 방 안, 형체만 흐릿하게 잡힐 뿐 누가 누군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기억대로라면 기준이, 성민이, 호철이 순일 텐데......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얼른 깨워서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페이지 :  8쪽  





긴박감으로 시작했다. 네명의 아이들은 탈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더 있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들의 외침을 들으면, 아이들이 끌려온 이 곳이 끔찍서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밤 공기를 뚫고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와 신음 소리 아이들은 어디로 끌려 온 것일까?

점점 아이들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춘천 공고에 다니는 기계과 아이들이다. 공고에 다닌다면 당연히 따 두었어야 할 자격증 하나도 따 놓지 못한. 빈둥빈둥 어딘가에 실습나가지도 못한 채로 졸업을 기다리던 아이들은 말을 시작할 때마다 ’그리고’를 덧붙이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천마건설에 실습을 나가게 된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추동리에서 아이들은 기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철탑 기초공사에 투입된다. 기껏 찾아온 곳이 막노동판이라니. 

사회는 무서운 곳. 





시끼들아, 계약을 위반하면 급료는커녕 배상금을 물어야 돼! 너희들 원주 사무실에서 계약서에 사인 했댔지?
 
페이지 : 56쪽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무시무시한 양대리의 손에 이끌려 막노동판으로 돌아간다. 원주 사무실에서 좋은 인상의 김과장이 내미는 계약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사인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형식적인 절차라고 했지만 그건 사회를 모르는 아이들을 옭아맬 구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거기에 항의할 아무런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래서 배움은 중요한 것이라는 교훈이 나오려나? ^^) 이렇게 무지가 원인이든 경솔함이 원인이든간에 아이들은 거의 한달여를 추동리에서 일하는 동안 일에 적응되기도 하고 시골음식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추동리에 적응해가고 있을 즈음에 더덕도둑 사건이 발생한다. 아이들은 그저 기분전환삼아 노래방에 다니러 양대리의 차를 몰래 타고 나갔다 돌아오다가 더덕도둑으로 보이는 차가 마을에서 달려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쫓아간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생각해보면 엄청난 일탈이다. 무면허에 미성년자. 게다가 음주를 한 상태다. 작은 차에 7명이 탔으니 인원초과는 물론이고. 몰래 타고 왔으니 도난차량이다. 이런 상태로 도둑을 쫓는다고 했으니 도둑으로 몰리지 않은 것도 이상하지만 아이들은 억울할 뿐이다. 





덥수룩한 머리카락, 야윈 목덜미, 구부정한 허리, 깡마른 다리......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자꾸 횡설수설하는 모양새가 직업도 없이 그냥 막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몇 년 후의 자신의 모습 같기도 했다.
 
페이지 : 204쪽  




재웅이는 철창 안에서 만난 청년의 모습을 관찰하며 자신의 미래의 모습이 될까 두려움에 휩싸인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이대로 그냥 어른이 된다면 바로 저 청년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재웅이는 이 불안감을 시작으로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 자신을 정정당당하게 인정하고 점차 할 일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철창에서 빼내기 위해 자기대신 머리를 조아리던 가족에게 문자도 보내고. 친구들과 좋아하던 은향이에게 우리가 꼴찌인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자신있게 클럽을 만들자는 제안도 한다. 마을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직거래 사이트를 만들자는 노력도 기울인다.

어른이 된다는 것.





거짓과 술수에 익숙한 어른들을 원망하면서 그저 사실이라고, 믿어 달라고 애원하는 수밖에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페이지 : 304쪽  




철탑 공사 때문에 마을이 홍수에 견디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논과 밭이 훼손되자 추동리와 천마건설은 서로 대립하게 된다. 마을 할아버지들을 앞세워 추동리가 입구를 봉쇄하고 건설업체를 들이지 않자 천마측에서는 조폭을 동원하여 할아버지들을 치기까지 한다. 그런 상황을 모두 보고 카메라까지 들이댔음에도 불구하고 사장앞에서 뻔뻔하게 오리발을 내미는 김 과장과 전무를 보며 아이들은 거짓과 술수에 익숙한 어른들의 모습도 보게 된다.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철창 구석에 앉아있던 총각이 될 것인가, 비록 자신들을 감시하는 역할이기는 했지만 자기 일에 충실하며 진실을 밝히는 용기를 보인 양대리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권모술수의 달인 김과장 같은 인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아는 것 많고 실천하기도 하지만 딱히 자신의 할 일은 하지 못하는 육법대사가 될 것인가. 

꼴찌들만이 가지는 힘이 있다. 억눌려 본 사람이 느끼는 울분이 있다.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 밑거름이 되고, 적절하지 못하면 철창신세가 될 뿐이다. 아이들은 막노동판에서 배웠을 것이다. 자신들의 억눌렸던 마음을 풀 열쇠도, 또 올바른 어른이 된다면 자신의 미래의 모습도. 삭막한 사회에 조금 일찍 내던져져졌지만 시들어 죽지 않고 씩씩하게 뿌리내린 아이들이 대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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