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소설 ' 돌의 집회 ' 를 출근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밤을 새워 읽어버렸던 기억에 집어들었다. 그 책에서 나타났던 담담하면서도 머릿속을 계속 움직여야하는 긴장을 느낄 수 있을까. 그의 소설에서 보였던 작가와 인물과의 그 엄청난 거리감을 느낄 수 있을까. 철저하게 인물을 조종하는 듯한 그의 구성은 인물들의 죽음에 나타난다. 그는 필요하면 그들의 삶을 아주 간단하게 마감해버린다. 주요인물이든 그렇지 않든간에 한 줄로 끝. 죽.었.다. 한 인간의 삶을 그토록 간단하게 마감하는 소설의 잔인함을 나는 그의 소설에서 진지하게 느끼고야 말았다. 장. 루이 시페르의 죽음이 그랬고, 폴도, 세마도. 그들에 대해 독자가 애정을 갖게 될 즈음 그는 그들의 이름조차 제거하고 그저 남자. 여자로 묘사한다. 죽음 뒤에는 이름이 남을 뿐. 돌의 집회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엔 그것이 오히려 더 강렬해졌달까. 그는 플로베르 연구자였다. 현실을 모르고 문학 연구에만 몰두했던 그가 1989년 28세의 나이로 광고회사를 나와 카메라르포 제작 대행사의 기자가 되어사진 작가 피에르 페렝의 유목 부족 탐방 여행에 동참하여 새 세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는 <파리 마치>, <선데이 타임즈>, <네셔널 지오그래픽> 등에서 특파원 활동을 했고 그래서 세계를 누비며 르포 기사를 썼다. 그가 자연, 환경, 폭력, 과학계의 새로운 발견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은 그의 소설에서도 드러난다. 여러 세계의 모습이 집약된 듯한 소설 속 세계와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9.11 테러 사건이 소설속에 등장하면서 그의 상상력과 현실의 절묘한 결합을 느껴볼 수도 있다. 그저 소설 속에서 지나가는 '그냥'사건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사건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플롯의 기이함을 첨단 과학 지식으로 정당화시키는 힘. 인간 사회의 폭력과 고독,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주제의 놀라운 형상화. 이 모든 것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