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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3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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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게코, 인간이란 그렇게 독창적인 동물이 아냐. 모두 뭔가를 흉내내면서 살고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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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6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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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시게코에게 아미가와를 대적할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도록 이끌어준다. 그녀는 동료 작가의 이 말을 떠올리고 아미가와에게 모방범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안겨준 것이다. 아미가와는 자신이 독창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리고 모방범이 되느니 차라리 진범이 되는 쪽을 선택한다. 과연 그 다운 최후가 아닐까.
어린 과거에서 그 범죄의 근원을 찾는 것은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식상한 것 같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한 진실도 없을 것이다. 히로미는 단순히 자기의 왕좌가 필요했다. 참을 수 없는 자신의 집안 형편, 지워지지 않는 죽은 누나의 환영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만의 왕좌. 그것은 단순하고도 폭력적이었다. 다케가미가 지적했던 것처럼 누구나 자신의 왕좌를 만들어 살아간다. 가족은 서로의 시민이 된다. 그러나 이 왕은 폭군일수도 있다. 히로미는 이 폭군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피스는 달랐다. 그는 아예 '나'의 존재를 찾을 수 없었다. 어디에서 자신이 시작되었는지조차 불분명했던데다 자라면서 자기의 소속마저 확실치 않았다. 아니 거부당했다. 그러니 그는 스스로 '나'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자리가 스스로 구축한 것이 아닌 남의 것이라는 말에 그토록 분노했던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유미코의 희생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그녀는 오빠 가즈아키보다 똑똑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오빠가 보았던 진실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는 처음부터 히로미보다는 피스가 더욱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히로미에게 당할때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던 피스의 모습을 목격했음에도 전혀 그의 진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도 혐오하던 메구미의 모습처럼 자신도 피해자 가족에게 난동을 부리고야 말았다. 아마 현실을 바라보기에 그녀는 무척이나 나약해져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이기심은 아닐런지. 메구미가 아빠의 구명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미래 계획을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세 권에 걸친 방대한 분량 속에서 자라나는 신이치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있었다. 그는 위태위태했지만 천천히 성장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3권에서는 그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는 요시오와 함께 지내면서 점점 용기를 되찾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아미가와의 모습에서 연극적 요소를 발견한다. 가즈아키가 상담원과 통화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그의 성문을 감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한 것도 그였다. 언젠가는 그가 형사로서 작품속에 등장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연쇄살인이라는 스토리도 그렇지만, 발견자의 사정, 피해자의 사정, 그리고 그것을 보도하고자 노력하는 르포기자의 사정까지 하나의 사건을 얼마나 다양한 방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추리소설의 진수를 읽는 기분이었다. 만나는 인물들의 상황이 이리저리 바뀌면서 인물의 성격과 태도의 변화까지도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읽으면서 더더욱 즐거웠다. 길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는 또 복잡하지만 가지런히 정리된 좋은 작품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