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리본의 시절
권여선 지음 / 창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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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리적 인간상. 현대의 그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이처럼 적절한 단어가 또 있을까. 사회 운동도. 절절한 사랑도. 야망도. 이미 모든 것이 시들해진. 그리고 무기력해진. 사회. 

누구나 마음 속에 감추고 살아갈 것 같은. 혹은 얼굴 포장 아래에 숨겨져 있을 것 같은 혐오감과 불신감. 자학과 자책.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더해지는 불쾌함. 이것들이 이 책의 간단한 감상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대체 무슨 정신병자들의 이야기이길래 그렇게 읽히느냐고 말하고 싶겠지만 사실 그들의 내면을 작가가 드러내 주지 않는다면 겉모습만은 우리 주변의 모습이나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다. 그 집요한 언어의 파고듦.

신선한 표현과 정신을 자극하는 언어들이 눈과 미각을 새롭게 해 주었다. 특히나 소설 곳곳에 음식을 기반으로 한 표현과 이야기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가을이 오면>에서는 딸의 행위가 부적절 하다고 판단한 어머니들이 딸에게 던지는 '미끈거리고 천덩거리는 바로 그 눈빛의 질감'을 미역 건더기에 비유한다. 또 <분홍 리본의 시절>에는 생선 조림을 잘하는 선배의 아내와 고기를 요리하기 좋아하는 '나'를 대비하면서 야채를 끓이는 수림으로 표현되는 여자들의 이미지들 처럼

여섯명이 가족처럼 사는 공동체에 들어온 '그'가 마련하는 일주일 한번의 회식.<솔숲 사이로>, 약콩을 끓이는 탄 내와 죽음이 드리워진 김교수의 집. 관같은 가야금이 등장하는 <약콩이 끓는 동안>, 우정에 대한 복수, 결투의 심정으로 대식가처럼 먹는 '나'를 그리고 있는 <반죽의 형상>, 술과 구토를 다룬 <문상>, 불륜인지 모를 커플의 뽈찜. 그녀가 꿈에서 보았던 남자가 대구로 뒤바뀌는 환상 <위험한 산책> 등. 

입맛을 다셔야 하는지 혹은 입맛이 떨어져야 하는지 알 수 없게도 상황은 먹는 것으로 시작하여 먹는 것으로 끝난다. 어쩌면 우리 모두 먹기 위해 혹은 먹음으로써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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