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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그 어느날의 일기를 꺼내어
7편의 단편 모두 1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꼭 '나'라고 할 수 없다. <나를 위해 웃다>에서는 엄마가, <첼로 농장>에서는 유진이, <마테의 맛>에는 J가, <댄스댄스>에서는 엄마아빠가, <휴일의 음악>에는 할머니가 매우 비중있게 혹은 거의 주인공으로 다뤄지고 있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같은 상처가 있음을 느끼는 순간. '나'는 성숙해진다. 그것은 남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보편적 진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로 서술되기에 또 하나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의 일기를 읽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지나 온 혹은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내가 이렇게 살았었노라고. 이러한 상처가 내게 있었노라고. 그리고 지금 나는 이러하게 살고 있노라고. 미래의 '나'는 명확하게 그려져 있지 않지만 과거의 '나'의 일기를 통해 그들의 현재를 생각해보게 하는 힘. 그것이 1인칭 서술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상처받았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접착제도 없이 작은 조각들을 이어 만드는 그 조립식 비행기는 쉽게 망가졌지만 이어붙이면 금세 다시 날아올랐다. " (p.172)
쉽게 망가지지만 다시 날아오르는 이 조립식 비행기처럼 정한아 소설의 주인공들은 상처받고, 그래서 다시는 날지 못할 것 같지만 '이어붙임'을 통해서 새롭게 날아오를 힘을 얻는다. 이 힘은 '새롭게 된 것'이 아니라 '이어붙여서 된 것'이기 때문에 전과 같지는 않은, 그러나 전처럼 이어지는. 그런 힘이다. 그래서 더 견고한.
" 일부러 두는 거예요. 바람과 비를 충분히 겪어야 나중에 뒤틀림이 없어요." (p.141)
소설 속의 인물들은 버려지기도 하고 버려지지 않기도 한. 그런 인물들이다. 버려졌다고 하기에는 아직 가진 것이 있고, 버려지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아직 못 가진 것이 있는. 누군가의 부재를 한번쯤 마음에 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게 부모든<나를 위해 웃다><아프리카>, 연인이든<첼로 농장><천막에서>,남편이든<휴일의 음악>, 아내이든<의자>, 자식이든<마테의맛> 혹은 그 누구든. 그들의 부재로 인해 삶은 상처받고, 그래서 그 상처때문에 휘청거리다가 결국은 이어지지 못할 것만 같아서 자신을 내던지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그들은 처절하게 싸워가면서 보내는 것이다. 상처의 딱지를 열고, 다시 딱지를 앉히고, 다시 그 딱지를 들여다보면서.
그러는 동안 딱지를 다시 열지 않아도 새살이 돋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들은 슬그머니 자신의 상처에서 눈을 돌려 보는 것이다. 그렇게 다가오는 내일은 다시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그러나 거기에는 상처를 덮는 딱지가 어제보다 견고하게 자리잡아 더이상은 긁어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딱지를 열어보았던 경험은, 새로운 상처가 생겼을 때. 이어붙임의 접착제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