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플라이, 대디, 플라이 ㅣ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심한 가장. 그러나 딸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아빠가 벌이는 고군분투 복수기. 그는 딸애가 권투선수에게 맞아 얼굴이 엉망이 되어 병원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분노한다. 그러나 상대는 죄책감을 갖기는 커녕, 위압적이고도 자신있는 태도로 피해자인 그들을 위협하고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병원을 떠나버린다. 아빠로서 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드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리고 딸을 대신해서 그녀석에게 복수해야한다고 생각한 것도. 그런 죄책감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영화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소설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도 그 소리를 듣고 이 소설을 집어들었으니까. 영화를 보고 싶어지는 생각은 오히려 좀 사라졌다. 소설이 충분히 재미있었으니까. 대개의 소설들은 영화화된 것을 먼저 보거나, 소설을 먼저 보거나 아무튼 먼저 본 것만으로 만족하는 편이어서 둘 다 섭렵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캐스팅된 인물들을 보고 그 역할에 어울리긴 하다라는 생각을 했을 뿐.
아빠가 점차로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과는 별개로, 순신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순화되는 것 또한 이 소설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오히려 그 쪽에 관심을 갖고 그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가 아빠의 선생으로 군림하는 동안 그는 굉장히 어른스러워보였지만, 결정적으로 사회에서 그의 보호자 노릇을 해야했던 것은 아빠였다. 그 관계가 다시 전도되었을 때. 순신도 아빠도 자신이 본래 어떻게 살아야 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는 때로 '나'의 모습이 아닌채로 살아간다. 의식해서가 아니라 그저 환경이 그렇기 때문에 '어른'임에도 아직 '아이'처럼, '아이'임에도 마치 '어른'처럼. 그런데 당시에 살아가면서 행동해야 할 보통의 과정을 못 밟으면 결국 그 과정으로 회귀한다고 하지 않던가. 본모습을 찾아 살아가는 것 그것도 도무지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