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위화열풍이 불던 때가 있었다. 아니 최근에도 '형제'를 통해 그 이름의 존재를 굳건하게 알린 작가이다. 나는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 오래 전에 지인으로부터 이 책을 소개받고는 읽어야지 읽어야지 미루다가 결국 이제서야 읽게 되었을 뿐이다. 중국 작가에게서 우리 시대의 모습을 읽게 된 것은. 그 지인의 덕분이라고 해야할 듯 하다. 나는 아무튼 이 책을 통해서 삶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었다.

 

" '그'의 이야기가 곧 '당신'의 이야기고 '나'의 이야기인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가? 물론 당신들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 안에서 '당신'과 '나'와 '우리'의 초상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 (p.350)

 

비평가의 이 글을 읽고 그래. 라고 생각했다. '나'이면서 '당신'이면서 '우리'의 이야기. 피를 판다고 했을 때는 그가 무척이나 불쌍하고 가난한 인물 같이 보였지만 그는 오히려 웬만큼은 살 수 있는 축이었다. 어여쁜 아내가 있었고, 세명이나 되는 아들이 있었고, 가뭄이 되어도 죽을 끓여먹을 수 있는 정도의 양식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늘 '피'를 팔 수 있었다.

 

도시에 살던 그가 시골의 넷째 삼촌을 보러 갔다가 농촌에서는 '피'를 팔아야 제대로 된 남자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피를 팔러 나가본다. 젊은 혈기에 피를 팔고도 멀쩡했던 그. 그는 자기 몸 속에서 언제나 만들어지는 피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는 기뻐한다. 그리고 이 '피'를 판 돈은 '힘'을 판 것과는 다르니 중요한 일에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아내'를 얻는 데 사용한다. 이 첫번째 선택이 그의 앞으로의 운명을 말해준다. 그는 '피'로 '가족'을 산 것이다. 그 이후 그는 쭈욱 '가족'을 위해 '피'를 팔게 된다.

 

자기의 아이가 아닐지도 모르는(여기서는 판명이 났다고 보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일락이가 허삼관의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허옥란이 좀 푼수짓만 안했어도..ㅡㅡ;) 일락이의 사고수습을 위해서 '피'를 팔기 시작한 허삼관은 가뭄에 굶주릴 때, 임분방과 열애중일 때, 일락이가 힘겹게 집에 돌아왔을 때, 이락이의 생산대장이 방문했을 때, 일락이의 생사가 위험해 졌을 때. 그때마다 피를 팔았고 가족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목숨이 다 하기 직전까지 피를 팔아대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절하다. 나는 이 모습에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았다. 목숨이 위태롭다고 여겨지기 전까지는 가족을 위해 해야할 일들을 마다하지 않던 그 모습을 말이다. 우리 집은 그다지 부유하지도,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았다. 허삼관네처럼. 그렇지만 모두는 힘겹게 살아내야 했다. 아껴야했고, 힘을 써야 했고, 어떤 것들은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삶에 불어닥치는 폭풍은 그저 피해낼 수만은 없는 것이어서 폭풍이 불어닥치면 가족끼리 힘을 합쳐 겨우겨우 맞서 내고는 했었다.

 

그렇게 '가족'을 지켜낸 허삼관. 마지막으로 자기를 위해 (소박하게도 피를 팔고 난 후 늘 먹었던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으려고) 피를 팔고자 하나 생애 처음 거절당한다. 거절당하면서도 그는 생각한다. "이제 큰 일이 닥치면 어떡하나"라고 .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놓지 못하는 그. 마음이 아팠다. 이제 아들 셋이 넉넉한 벌이를 하고 그래서 피를 팔지 않아도 되는 그의 심사가 안타까워서.

 

아들들이 주는 돈으로 허옥란과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앞에 놓고 둘이 주고받는 대화는 그야말로 부부의 대화다. 피를 안 팔아주던 혈두놈을 욕하는 허옥란과 그 욕이 흐뭇하면서도 근엄하게 받아 마치 어른이 한 마디 하듯 내뱉는 허삼관의 유머는.

 

그가 죽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언젠가 그도 죽겠지만. 우리 모두가 다 그렇지만. 적어도 소설 속에서는 늘 살아남아 흐뭇한 미소를 띄우며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고 있을테니. 그리고 그것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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