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짧은 머리에 약간 모자란(?) 듯한 턱수염. 어설프게 잡은 담배와 학생신분인 듯도, 혹은 아닌듯도 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는 표지 그림을 보고 스무살, 도쿄의 내용을 짐작하기란 그닥 어렵지 않다. 반은 자전적 소설이라는 설명은 나중에서야 읽게 되었지만 읽는 내내 오쿠다 히데오의 이력을 떠올리며 반쯤은 혹은 그보다 더 많이 그의 실제 이야기가 반영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했다. 

'공중그네'를 읽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접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이라부의 모습을 지워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라부에 비하면 주인공 히사오는 제법 진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제법 진지하기도 하고 제법 유머스럽기도 한 그의 모습이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80년대에 한참 자라고 있었다. 정신없이 자라느라 시대에 대해 생각할 나이도 아니었지만 그럴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크느라, 노느라 바빴으니까. 그러다가 20대가 되면서 80년대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던 시기가 있었던 것을. 그 정신없던 시기가 나 어릴적에 지나가버린 것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이야기거리가 사라져버린 것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 일생을 되돌아본다면 아마 이 책의 구조처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일매일 일상이 반복되고, 늘 그래왔던 것 같지만 그 중 어느 하루. 뚜렷하게 남는 어느 하루들이 있다. 그 하루의 기록이. 그리고 그 하루의 추억이 모여 오늘의 '내'가 된 것이다. 소설 속 히사오의 10년도 그렇게 뚜렷하게 남는 각각의 하루들의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일매일 술을 퍼마시던 대학 초년시절, 자신을 좋아하는 여학생과 그 친구들의 계략에 휘말려 어이없이 뛰어다니던 어느 하루. 처음 도쿄에 올라와 새로운 도시를 탐험하다 결국 고향 친구를 찾아가 어른인 척 해 보았던 하루. 아버지의 회사가 망하고 하루종일 원치 않는 심부름 때문에 밥도 못 먹고 돌아다녔던 사회 초년생의 하루. 사회에 적응했다고 생각하고 우스대며 아래 직원을 부리다가 상사에게 자신의 단점을 지적받은 하루. 억지로 주선자리에 끌려나갔던 하루. 이제 제법 자리 잡은 카피라이터로서 여기 저기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느라 정신없어하다 문득 친구가 꿈을 잃었다고 말할 때 주춤. 했던 그 하루까지. 

그렇게 가끔씩은 계단을 그리며 성숙했던 히사오의 하루들. 그리고 그렇게 지나간 나의 20대 하루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정도 굴곡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성숙해 나가지 않은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이제 막 서른을 넘긴 나에게 그의 성장기는 울컥. 내게도 주춤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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