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쥐 퍼민
샘 새비지 지음, 황보석 옮김 / 예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젖꼭지를 열 두개밖에 가지지 않은 엄마쥐에게서 태어난 13번째 쥐 퍼민. 그는 이렇게 잉여적인 부분을 태초부터 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삶도 잉여적이다. 쥐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소비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생산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삶. 그런데 묘하게도 이러한 삶은 그가 사랑한 인간 노먼과, 제리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쓸쓸한 그들의 뒷모습과, 퍼민의 마지막 모습은 서로 닮아있었다. 

제목에 집착하는 나의 특성상 읽으면서 내내 퍼민이 언제쯤 소설을 쓰게 될까를 생각했다. - 퍼민이 미리 경고했듯이 라따뚜이의 주방장쥐와 혼동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 책을 마치고 난 지금은 퍼민이 머릿속으로 소설을 썼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수많은 책들을 먹고, 그것을 머릿속에 자신의 이야기로 배설했다. 

인간보다 인간적인데도 불구하고 쥐로 살아가야 했던 퍼민의 삶이 비극이라고는 하지만, 꼭 그렇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쥐가 쥐답게 살아가는 것도 꽤나 비극적이니까. 퍼민의 형제중 하나가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자동차 바퀴에 깔려 의미없이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아마도 형제들 중 일부는 그렇게 죽었을 것이다. 아마도 쥐약을 먹었을 수도, 사람들의 눈에 띄어 빗자루에 맞았을 수도 있다. 퍼민이 처할 뻔 했던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 그들도 처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퍼민의 비극은 그가 쥐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의 허영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알아차릴만큼 자의식도 강했다. 그것이 더 비극이었다.


물론 나는 그 고통의 강도가 나의 엄청난 허영심과 정비례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 생각 때문에 속만 더 상할 뿐이었다. 그저 추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허영심까지 강하다는 것, 그것은 웃음거리를 더해주는 것밖에 되지 못했다.
 
페이지 : 74쪽  

쥐의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소설은 그 소재가 쥐이든 개이든 뱀이든 소이든간에 결국은 모두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책을 씹어 먹으면서 성장한 퍼민의 자의식. 그리고 그의 내면을 차지하고 있었던 그의 허영심. 고독함 속에서 버틸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랑할 대상을 끊임없이 찾았던 - 그는 이것까지 인식하고 있지는 못했을지라도 - 퍼민의 사회적 욕구. 그것이 우리를 늘 삶에서 비참하게 스러지도록 만드는 것들이 아니었던가. 

퍼민의 책목록을 들여다 보면서 읽었던 책의 제목을 만나는 일. 그 주인공을 상상해보는 일. 그리고 읽어 볼 책 목록에 그것들을 추가해 보는 일.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해 볼 수 있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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