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소설 대부분은 인간의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돈을 위해 글을 썼고, 그의 이야기의 대부분은 돈문제에 할애되었다고. 그렇게 놓고 보면 그의 소설은 영이상학적인 구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 즉 현실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 작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욕구발달단계라는 것이 있다. 가장 원초적인 욕구는 생리적욕구이다. 먹고 자고 싸는 것. 그리고 안전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인간의 욕구단계는 계단을 밟듯이 아래층을 밟지않고는 윗층을 밟을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니다. 생리적 욕구가 완전하게 충족되지 않아도 자아실현의 욕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래서 '돈'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돈'을 거부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돈'은 생리적 욕구부터 자아실현까지 한꺼번에 충족시켜주는 도구이기도 하고, 반면에 자아실현의 욕구보다는 생리적 욕구에 급급하다는 낭패감을 안겨주는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렇게도 돈에 대해 이중적인 인간군상을 묘사했는가보다. 그는 정말 현실주의자다. 

저자가 쓴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어서인지 끊임없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비교되었다. 둘 다 천재였지만 그 재능의 발현은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부유했던 톨스토이는 그 부유함을 피해 도망가려했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가난함을 피해 도망가려했다. 톨스토이는 자기의 사상을 잘 다듬은 플롯으로 소설화해 냈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놀라운 직관으로 소설화해 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구원을 열망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젊었을 때의 죄과를 씻어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노년에 극상의 도덕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한편 도스토예프스키는 끊임없이 돈을 갈구하며 돈으로 구원을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돈을 남에게 사용하면서 만족했던 것은 그것이 자신의 만족감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역시 죽음 이후를 생각했다. 죽음 이후에 대한 둘의 열망은 둘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대단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삶을 순차적으로 밟아나갔던 톨스토이와, 아버지의 삶을 증오했지만 결국 말년에는 아버지를 닮아버린(땅에 집착하던 말년을 떠올리면) 도스토예프스키. 아들의 종류에는 이 두가지가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이 두 사람은 여러면에서 왠지 비교해보고 싶어진다. 아마도 두 사람이 끊임없이 대별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겠지만. 

사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는 해도 굉장히 부유하게 돈을 '쓴' 사람이다. 그의 생활이나 그가 친지들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쓴 편지를 체호프나 채만식이 읽으면 코웃음을 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원고료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글을 썼던 두 사람은 그에게 뭐라고 말할까? 아마 '그 돈 나 좀 달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주 자잘한 것들 까지도.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아 그에 관련된 책을 찾아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반대의 경우는 참 드문 일인데 새삼 저자의 필력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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