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자기처럼 기댈 곳 없는 아이의 유일한 피난처에 자리잡은. 하필이면 그렇게 초라한 몰골로. 그러니까 죽은 채로. 자리잡은 그. 그에게 주인공 지수는 이름을 지어준다. 미스터 하필이라고. 하필이면 거기 그렇게 있었기 때문에. 하필이면 거기 그렇게 있는 것은 단지 미스터 하필만은 아니다. 지수역시 그렇다. 하필이면 거기 그렇게 존재하게 되다니. 그래서 그는 말을 잃어버리고 만다. 가족들로부터 떨어져나온 채 이해받지 못하고 휘휘 떠도는 중학생으로서의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어른과 아이의 말을 구분했던 예민했던 자아가 스스로에게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으리라. 그래서 그에게 이미 죽음에 이른 미스터 하필은 좋은 조언자가 되어준다. 어렸을 때 나도 어른들은 외계인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어떤 악의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가르면서 아마도 주변의 사람들을 외계인같은 다른 존재로 설정해야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들이 외계인이고 그래서 우리는 더 빨리 이들을 지나쳐 목적지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의 재미있는 추억담. 하필이 지수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바로 여기 추억의 놀이에서 시작한다. 시골에서 자란 지수의 놀이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 추억보다 더 이전의. 나보다 더 이전의 어른들의 추억을 듣는것만 같았다. 남자 아이들의 담력내기같은 것은 이해가 가는 한편 생소하기도 하고. 내 시대에서는 아마 지하철을 타고 문 닫히기 직전에 빨리 내리는 정도의 장난일까. 싶기도 하고. 가난하고 그래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고. 그것을 견뎌내는 것이 버거운 중학생 지수가. 삶을 통과하는 죽음을 깨닫기까지 괴로움을 모두 말로 쏟아내기까지 그래서 말을 다시 찾을 때까지의 과정은 한 편의 성장기이다. 하필과의 대화가 가능하게 한 성장은 그러니까 과거를 잘 갈무리해야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는 지혜로운 조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