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빠라고 불러 - 배고픈 여우 콘라트

배고픈 여우 콘라트
크리스티안 두다 지음, 율리아 프리제 그림, 지영은 옮김 / 하늘파란상상 / 2009년 12월

배고픈 여우가 있습니다. 이름은 콘라트라고 하지요. 여우치고는 꽤나 분위기 있는 이름이 아닌가요? 애초에 여우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여우가 여우처럼 살려면 이름이 없어야지요. 아무튼 이름있는 이 여우는 배가 무척이나 고픕니다. 야생에서 야수의 꼬르륵 소리는 얼마나 위협적일까요. 이 위협적인 소리를 하며 오리엄마에게 달려들었으니 그가 친구가 되고 싶었던 아니던간에 도망갈 밖에요. 오리엄마는 이 위협적인 동물 앞에 품고있던 알 하나를 버려두고 달아나 버립니다. 

꿩대신 닭. 엄마오리대신 오리알. 오리알 요리를 해먹기로 결심한 콘라트는 집으로 오리알을 가지고 갑니다. 그런데 그만 오리새끼가 부화해 버렸습니다. 이런이런. 알을 먹으려고 했더니 빵조각보다 작은 새끼오리라니요. 게다가 이 새끼오리는 콘라트를 엄마라고 부르기까지 합니다. 어이가 없는 콘라트. '널 잡아먹겠다'고 해야하는데, '난 엄마가 아니라 아빠야'라고 해버립니다. 그야말로 이름있는 여우의 말 답습니다. 그리고는 키워서 잡아먹어야지 결심을 하고는 이 새끼여우에게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로렌츠라는 이름을요. 

콘라트 로렌츠는 각인이론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랍니다. 이 인물이 발견한 각인이론 덕분에 여우아빠는 새끼오리를 갖게 된 것이지요. 이름을 지어준 이상 과연 콘라트가 새끼오리를 키워 잡아먹을 수 있을까요? 이따금씩 처음 만난 호수에 나가 함께 수다떨던 이 아들을 말입니다. ^^

결국 콘라트는 배고픈채로 세상을 떠납니다. 배고프지만 뱃속에 한 마리 오리를 담는 대신, 가슴에 한 무리의 오리를 담았답니다. 한순간의 행복보다 영원의 아름다움을 택한 콘라트. 그의 철학이 왠지 마음저리게 다가옵니다.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정든다'는 것은 무엇일지. '길든다'는 것은 무엇일지.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