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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 ㅣ 황석영 중단편전집 2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공사장의 뜨내기 노동자 노영달은 임시 거처지에서 밥값을 떼먹고 도망치던 중 우연히 정씨를 만나 일행이 된다. 정씨는 10년전 떠났던 고향 삼포로 가는 중이었지만 영달은 어차피 떠돌아야 하니 정씨와 같이 가 일자리나 구해보겠다고 마음먹는다. 정씨가 찾아가는 고향. 삼포는 어떤 곳인가.
- 삼포, 그리움의 공간-
정씨와 후에 그 일행이 되는 백화는 고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큰 위안을 느낀다. 고향으로 한 걸음씩 다가간다는 것, 고향이라는 목표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삶을 이어가게 해 준다.
"사람이 많이 사나요, 삼포라는 데는?"
"한 열 집 살까? 정말 아름다운 섬이오. 비옥한 땅은 남아돌아가구, 고기두 얼마든지 잡을 수 있구 말이지. "
영달이가 얼응 위로 미끄럼을 지치면서 말했다.
"야아 그럼, 거기 가서 아주 말뚝을 박구 살아 버렸으면 좋겠네."
"조오치. 하지만 댁은 안 될걸."
"어째서요"
"타관 사람이니까."
정씨에게 고향은 타관 사람이 아닌 자기만의 울타리이다. 그곳 출신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곳. 아름다운 섬. 비옥한 땅과 고기가 가득한 그 섬에 자신은 받아들여지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른 사람은 안된다. 삶이 척박할수록 고향의 아름다움은 그에게 힘이 되어준다. 같은 길 위에 있지만 영달과 달리 그는 떠돌이가 아니다. 갈 곳이 있으니까. 백화를 만났을 때도 영달보다 훨씬 여유있게 그녀를 대할 수 있다. 그리고 도망가는 것이 뻔한 그녀에게 행선지를 묻는다. 그에게는 고향. 그것만이 주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공간 -
그러던 정씨에게 들려온 고향의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이미 산업화된 고향. 풍문조차 낯선 그곳은 정씨가 돌아가려던 삼포가 아니다. 고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섬이 아닌 것이다. 결국 정씨도 영달과 마찬가지로 길 위의 떠돌이가 되는 순간이다. 영달과 함께 정착하고 싶어했던 백화도, 정착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영달도, 그리고 정착할 곳을 순식간에 잃은 정씨도. 그저 서 있을 뿐이다. 그 길 위에. 이제 그 길은 삼포가는 길이 아니니 무어라 불러야 할까.
순식간에 고향을 잃어버린 정씨의 안타까움이 글을 읽는 나에게도 허전함을 불러왔다. 당시 그렇게 고향을 잃어버린 세대를 떠올려보기도 하였다.
- 우리 삶. 그 길.-
소설에서는 고향의 변화와 그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고 있었지만. 나는 길에 대해서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길 위에서의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누군가는 목표를 가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채로, 누군가는 목표를 가질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로. 하지만 어떤 상태였든 우리는 간다. 그리고 그 길은 어떠한 길이라고 훗날 이름붙여 질 것이다. 그것은 세파에 흔들리는 길이어서 우리 의지와 달리 이름붙여질 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매우 허전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