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이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리고 다른 이의 삶을 결정내릴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러나 다른 이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하게 다른 이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다른 이의 죽음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다른 이의 죽음을 결정하는 이들. 그리고 그 죽음을 계획하는 이들. 그리고 그 죽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실행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설계자들이다. 

죄책감은 어느 쪽이 더 클까. 지시하는 쪽일까. 아니면 계획하는 쪽. 아니면 실제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죽는 순간까지 함께 있었던 가장 아랫단계에서일까. 그렇다면 실제로 죄의 무게는 어느 쪽이 더 클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의 목숨을 결정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그를 도와주기 위해 지능을 이용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무력으로 죽음을 가져오는 사람일까. 아니면 모두가 자신을 위해 남을 죽인다는 측면에서 딱 그만큼 동일하게 죄를 지은 것이고 또 딱 그만큼 동일하게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지시자들은 제외하고 설계자였던 미토와 실행자였던 래생은 동일하게 자기들이 삶을 살아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죽이면서 자기도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이들에게 삶이랑 죽음의 직전에 서 있는 어느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은 미묘해진다. 이들은 분명 살인자들이고, 어떤 이유가 되었던지 간에 이러한 살인으로 얼마간의 이익을 얻었으며, 빠져 나올 수 있는 기회를 거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연민이 드는 것이다.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이들에게. 회의주의자인 래생에게 미토는 말한다. 그렇게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부딪혀야 한다고. 그렇게 되면 나중의 누군가가 나의 일을 이어받을 것이라고. 그녀는 그녀의 신념대로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안쓰러운 지도 모르겠다. 래생 역시 그의 신념대로 살았다. 그가 설계한 순서대로. 그가 설계한 방법대로. 아마도 그의 설계 마지막 명단에서 미토를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넣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그가 답한대로다. 모르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아마도 그게 래생의 신념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말했듯이 사람은 자기 신념대로 산다. 그러나 살면 살 수록 확실한 것은 사라지고, 그래서 자신의 신념대로 하면서도 결국 그게 옳은지, 그렇게 해도 좋은지, 혹은 아예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게 된다. 우리들 각자는 자기 신념의 어느만큼에 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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