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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죽음마저 먹게 만드는 수용소
‘수용소는 실용적인 세계다 수치심과 두려움은 사치다.’ p.168
‘삶의 질’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많다. 그러나 ‘삶’ 그 자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적다. 우리가 ‘삶’ 이하로 떨어지는 순간은 바로 이 최소한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다. 수용소 생활은 바로 이 순간. 삶의 ‘질’을 추구하던 인간이 ‘삶’ 이하로 떨어지는 그 순간의 지속이다. 그들에게는 ‘삶’이 목적이자 수단이다. ‘삶’ 이외의 것은 없다. 그들은 모두 ‘죽음’가까이에 있지만 아무도 ‘죽음’이후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벌어질 자신들의 ‘삶’의 지속을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은 시체를 보고 두려워하기 보다는 그에게서 가져와야 할 물건들을 생각한다. 이제 그에게는 필요 없어진 옷과 신발. 적으나마 가지고 있었던 소지품들. 혹시 저녁에 먹으려고 남겨 둔 빵의 소재. 그것들이 ‘죽음’을 정리하는 그들의 의식이다. 배고픔은 죽음마저 먹어버린다.
삶을 지속시키는 기억. 그리고 언어.
'내 모든 것이 나와 더불어 간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가지고 갔다.‘ p.9
수용소에 가기 위해 짐을 싸면서부터 시작된 물건들에 대한 사고는 수용소시절에도, 수용소 생활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된다. 아니 사소한 물건들을 생각하는 일은 수용소 시절에 오히려 더 심해진다. 이제는 물건이 아니라 단어로 존재하기 때문에 더더욱 의식 속에 짐을 꾸리며 한 때 그들이 ‘내 것’이었음을 확인한다. 언어는 사물의 기호일 뿐이지만 사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하지만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 언어로 남아있기도 한다. ‘용’이나 ‘봉황’처럼. 상상속의 무엇들도 분명 이름이 있다. 수용소의 레오에게는 이 물건들이 존재하지 않으나 이름만 남은 ‘용’이나 ‘봉황’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잡고 있어야했다. 그래야 ‘삶’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레오는 ‘호텔’이라는 단어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이발사에게 반발하면서도 역시 그런 명칭들을 기억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상하는 것을 언어로 가지고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레오는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져야 할 것이 희망이라면 희망도 일종의 상상일테니까. 그리고 그 상상을 지속시키는 힘은 언어로부터 비롯되었을 테니까. 이 작품이 시적이라면 그 또한 레오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중에 하나로 보아야 한다. 그는 언어를 통해 살아남았다. 어둠 속에서 빛을 말함으로써 살아남은 것이다. 그가 떠나던 날 할머니가 ‘너는 돌아올거야’라는 말을 그의 의식의 짐 속에 넣어주었듯이. 그는 매 순간 이 말을 부여잡았다. 언어로 재생할 수 있는 과거의 최대한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한 번은 나도 비단길 밟을 날이 오겠지’라고 자신을 위로하게 되었다.
결국 올라감과 내려감이 반복되는 ‘숨그네’
'작은 보물은 나 여기 있다라고 적힌 것들이야.
그것보다 조금 큰 보물은 아직 기억나니라고 적힌 것들이고.
그러나 무엇보다 큰 보물은 나 거기 있었다라고 적힌 것들이지.‘’ - p.308, 327
가죽 각반을 팔아 먹을 것을 무엇이든 장만하려고 장터에 나갔던 어느 날. 레오는 10루블을 손에 쥔다. 그것으로 먹고 싶은 것을 닥치는 대로 사먹는다. 돌아가면서 먹을 것까지 챙긴다. 배부르고 남는다. 문명에 가까운 그 기꺼움. 그러나 배고픔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그 때. 그 비싼 것들을 순식간에 토해버리고 난 다음 그는 ‘뭐하러 장터에 가야 하나, 나를 안전하게 가둬두는 수용소가 있는데.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곳은 내가 속하지 않는 곳뿐이다.-p.161’ 라고 되뇌인다. 장터에 가서 기를 쓰고 음식을 먹어봤자, 배고픈 천사는 떠나지 않는다. 굶주림에 익숙한 위장은 주인의 욕망을 배신했다. 절대영도. 어느 것도 예외 없는 곳. 수용소를 그렇게 정의한 이유는 한 순간의 행운을. 단 한차례의 배부름을 허용하지 않는 자신의 위장을 향해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년의 세월을 함께 한 이 배고픈 천사는 그 이후에도 그를 떠나지 않는다. 배가 불러도, 따뜻한 이부자리를 얻어도, 소개받아 다니게 된 상자공장에서도. 그가 수용소에서 고향을 잊지 않았듯. 고향에서도 수용소는 잊히지 않았다. 수용소 생활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했다. 수용소 생활이 끝났어도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레오는 ‘무엇보다 큰 보물’을 얻지 못했다. 거기 있었다고 해야 하는 데 아직 거기에 살고 있으며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숨그네는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을 반복하면서 삶을 지속시키는 동시에 끊임없이 그를 올려놓았다가 또 끌어내렸다가 할 것이다.
‘숨그네가 공중을 한 바퀴 돌고, 나는 헉헉거린다.’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