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장의 참극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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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장의 참극』은 전쟁이 끝난 뒤, 기존 귀족 계급이 몰락하고 신흥 재벌 세력이 등장하던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의 귀족 문화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느 시대든 지배층의 몰락과 새로운 세력의 부상은 반복되는 역사이기에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추리소설의 가장 큰 재미는 역시 ‘누가, 어떻게, 왜’라는 질문을 좇아가는 과정에 있다.
CCTV도 블랙박스도 없던 옛 시절이기에, 이 작품에서는 부재(결핍)를 추리로 채워가는 묘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

탐정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긴다이치 고스케.
말더듬이에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는 이 청년이 훗날 김전일이 “할아버지의 이름으로!”를 외치며 모시는 바로 그 ‘할아버지’라는 사실은, 이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가장 큰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그는 대체 언제 결혼을 하고 무려 아이까지 낳았는가!!)
하지만 그만큼 전설적인 명탐정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공간’이다.
제목 그대로 저택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로처럼 구성되어 있다.
원래 명칭은 ‘명랑장’이지만, 저택을 설계한 귀족이 위기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곳곳에 탈출구와 사각지대를 만든 탓에 후대 사람들에게는 ‘미로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귀족 세력이 사라지고 신흥 재벌 가문이 이 집을 물려받았지만, 저택에는 여전히 과거의 참극이 깊은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

이 소설의 재미는 단순한 추리에만 있지 않다.
저택 아래 뻗어 있는 복잡한 지하 미로, 숨은 공간, 오래전 사건의 흔적들…
모두가 상상력을 자극하며, 마치 만화 속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읽는 동안 영상처럼 장면이 펼쳐진다.

여유로운 주말이나 조용한 밤 시간에 읽기 좋은 책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 속에서, 고전 추리만의 분위기와 공간 자체가 주는 미스터리함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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