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모노그래프 4
전형준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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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가 썼다는 것 말고는, 그래서 학자의 관점에서 무협의 역사를 정리했다는 것 말고는 그리 특이할 것이 없었다. 좌백만큼 새롭지 못하고, 진산만큼 날카롭지 못하다. 그가 논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이미 한 번쯤은 논의된 것들이다. 다만 그는 학자이고, 중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좀 더 절제된 형식으로, 깊이로 파고 들어간다.

다만 한 가지 배웠다면,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에 대한 구분이다. 순수문학은 현실의 갈등을 증폭하는 불편한 문학이고, 대중문학은 현실의 갈등을 덮어두거나 해소시키는 즐거운 문학이라는.

나는 내 견해 - 순수문학도 장르문학의 일종이다 : 전문적으로 인생을 고민하는, 인생 고민 매니아들만 읽는 문학이라는 생각에 아직 변함이 없다. 하지만 성민엽씨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원용한 정의에도 배운 바가 많다.

아, 그리고 한국적 무협에 대한 사유의 방향이 나와 비슷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는데, 작가가 무협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인터넷에서 읽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매진이나 무적에서 무협에 대한 논의가 꽃피던 시절, 좌백이나 진산의 날카롭고 화려한 무협 이야기들... 그리고 한국적 무협에 대해서는 확실히 내가 써놓은 글 이상의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못 본 것 같은데, 그것도 비슷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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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일지매 1
허수정 지음 / 북갤럽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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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다. 정말 형편없는 책이다. 어지간하면 이런 표현은 잘 안 나오는데, 작가는 도대체 무슨 생각하고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다. 아니, 글은 그렇다고 치고, 자신감 넘치는 작가 후기가 좀 기가 막힌다. 당연히 즐거웠지? 나의 의사역사소설이? 어쩌구 하는...

스토리는 60년대 무협이고, 문장은 순수문학의 아류 느낌이다.본인은 의사(사이비) 역사소설이라고 하지만, 불행히 역사라는 말은 붙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소설속의 역사에 대해서 매우 관대하다. 고증 같은 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문제는 역사를 대하는 태도이다. 이 작가에게는 어쩐지 무성의함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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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1:제1부 -상 - 창비장편역사소설
송기숙 지음 / 창비 / 198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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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평론가가 뽑은 해방후 한국소설 50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알만한 역사소설들은 대강 다 목록에 올랐던 걸로 기억난다. 장길산, 혼불, 토지, 태백산맥, 봄날, 객주.... 그 이외에 기억나는 것이 바로 송기숙씨의 녹두장군이었는데, 글에 비해 별로 읽히진 않았다는 기억이 난다. 객주 또한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었지만, 작가인 김주영씨는 칠성사이다 선전에 나올만큼 대중적 주목을 받았나본데, (홍어, 라는 것도 꽤 베스트셀러였지? ) 송기숙씨는 유독, 그 주목이 적은 것 같다. 대학생들이나 돌려보는 자랏골의 비가, 정도?

열권이나 되는 대하소설들에는 나름대로 색깔이 뚜렷하다. 단편으로 보여줄 수 없는 작가의 모든 것들이 통틀어 나열된 역사소설 속에는, 가령 임꺽정이면 잘 차려진 옛날 이야기 밥상 하나 가득이라는 느낌. 봄날은 피맺힌 광주의 절규를 쓰기 위해 자기 명을 깎아가며 망우리 공동묘지를 미친 사람처럼 헤맸다는 착한 소설가의 피끓는 절망과 분노, 장길산에는 정의로 가득 뭉친 우리들이 우리의 손으로 역사를 바꾸고 말겠다는 낭만적이고 힘이 넘치는 긍정, 같은 것 쯔음이 될 텐데,

저마다 그 시대 백성의 가장 낮은 곳을 훑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소설이 많은 데 비해서 진짜로 그 낮은 곳을 훑었다는 느낌이 드는 소설은 몇 없었다. 나는 특히 이 범주에 조정래씨를 넣고 싶다. 그들의 소설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가장 낮게 관찰하려고 애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를 지식인의 냄새가 난다. 가령 태백산맥에서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던 인물인 김범우의 한계를 벗어던지지는 못한다는 느낌이다. 물론 작가는 그 한계를 스스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김범우 스타일의 인물을 빼놓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2.
그래서 송기숙의 녹두장군은 느낌이 색다르다. 녹두장군의 문장은 옛 글의 냄새를 풍기는데, 이 옛 냄새는 김주영이나 황석영의 '우리말 문체'와는 또 느낌이 틀리다. 녹두장군은 1920년대 작가들이 쓴 문장과 여러 가지로 느낌이 비슷하다. 짧고 간결한 문체로 툭툭 던지듯 액센트 없이 흐르는 문장을 별 생각없이 읽다가, 사건이 어떻게 넘어갔는지 제대로 짚지 못할 때가 가끔 있다. 또 녹두장군에는 '심리 묘사' 라는 것이 거의 없다. 어떤 인물의 내면을 보여준다기보다는 그저 흘러가는데로 겉을 훑어보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내가 송기숙씨의 글에서 1920년대를 느끼는 이유는, 헌책방에서 산 그 책이 1920년대책처럼 빛이 바랬기 때문일 수도 있다. -_-)

송기숙씨는 동학란을 동학이 아닌 농민 봉기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나야 잘 모르긴 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는 느낌이다.

3.
녹두장군에는 '착한 관원'이 없다. 하지만 이건 조정래씨의 소설에 '착한 우익'이 없는 것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착한 우익'이 없다는 것은 우선 사실과 다를 것이고, 그리고 우익이 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착한 관원이 없는 이유는 너무 명백해 보인다. 돈 내고 수령 임직 받아서 석달 있으면 갈리기 전에 본전 뽑아야 된다는 그 시대 실상이라면, 설명이 되고도 남는다.

4.
관원들이 이끈 역졸이 고부 부녀자 '전체' 를 다 겁탈하는 장면이 나온다. 열 살 짜리 어린아이까지 겁탈당했다는 그 이야기들을 사료 뭉치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어이가 없고 치가 떨리는 이야기였다. 몸을 버리면 목을 매던 시절에, 명색 대하소설에서 없는 이야기를 했을리는 없는데...

함께 그런 이야기도 있었다. 그 마을 남자들이 그 일을 조용히 덮어버렸다고.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을 것 같다. 정말, 덮어둘 수도 덮어두지 않을 수도 없는 문제인 것 같다.

5.
역사소설속에서 가끔 그렇게 훑고 지나가는 사건들을 현재로 추체험하면 정말 상상하기도 힘든 무서운 일이 된다. 나 자신에게 추체험하면 더 무서운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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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전 3
권오단 지음 / 영언문화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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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우치전에서 내
눈을 가장 잡아당긴 것은 서사의 방식이었다. 서양 소설 이론에서의 개연성
어쩌구 하는 것을 끌어들일 경우, 전우치전은 소설도 뭣도 아닌 황당함 뿐이
다. 전우치전의 사건 전개는 개연이나 필연보다 우연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한
다. 우연히 만난 노인이 조선 제일검이더라, 도망가다가 만났는데 풍류문의
후계자더라, 전우치전의 사건 전개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이다. 이
서사가 조금도 짜증나거나 낯설지 않은 까닭은?

전우치전의 내용은 조선시대의 것이라기보다는, 새소년이나 어깨동무에 연재
되던 일지매의 정서라고 느껴진다. 이 정서는 임꺽정과 장길산을 대조해서 읽
었을 때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임꺽정이나 홍길동을 의적의
대명사로 칭해 부름에도 불구하고, 실제 벽초의 임꺽정이나 허균의 홍길동전
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의적의 활약은 구체적이지 못하다. 전우치전(권오단님의
전우치전이 아닌, 고전소설 전우치전)에서도 전우치의 활약은 우리가 생각하는
의적의 모습과 약간의 거리가 있다. 이에 반해 장길산에 등장하는 의적들의
활약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 구체적으로 일치한다. 양반네 집에 쳐들어가서
통쾌하게 무찌르고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는 모습. 아울러 내용중에 등장하는
숱한 경전의 인용, 고전의 인용들은 빛바랜 도덕교과서의 느낌을 준다. 이 경
전 인용구를 읽고서 인생을 반성할 사람이 있는가? 오히려 열명중의 아홉명은
시리얼란에서 이 인용구가 나오기 시작하면 엔터를 눌러 장을 바쁘게 넘겼을
것이다. (나또한 그랬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장황한 인용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인용들은 통채로 하나의 기호가 된다.
장길산의 장황한 민속 재현, 객주의 민요 재현, 혼불의 민속 재현들은 독자의
정밀한 눈길을 받지는 못하지만, 소설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말하자면
한 마디의 수식어쯤이라고 할까? 임꺽정이라고 하면 토속성, 장길산이라고 하
면 사회경제, 객주라고 하면 유장한 우리말, 이라고 붙이는 한마디씩의 수식어
들 말이다. 그래서 전우치전, 이라고 하면 공자님 말씀! 이라는 정도의 수식어
가 떠오르게 하는 인용구라고 할까. 그러나 이 공자님 말씀들은 권위나 엄숙함
보다는 약간의 희극성과 함께 지나간 낡은 것이 주는 정다움을 보여준다. (작
가의 의도에 아마 훨씬 못미치는 해석이 될 듯 하다. 조금 당황스럽게도, 나는
작가가 정말로 독자들에게 옛날식으로 사서삼경을 가르치고 싶은건가? 라는 느
낌을 받았다.)

전우치전의 내용적 측면이 그렇다고 할 때에 형식들은 어떤가? 사건의 전개 방식
그리고 이야기의 서사 방식은 민담 및 구전소설들의 양식과 매우 닮아있다.
사실 전우치전에는 기발한 반전이라고 할 부분이 거의 없다. 한 단락이 시작하는
부분에서 어지간한 독자라면 앞으로 사건 전개가 어떻게 될것인지 대강 짐작을
할 수가 있다. ...이때쯤 누가 나오겠네. 이때쯤 누가 도와주겠네. 하는 식의 짐
작은 글을 읽어가는 중에도 종종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거나
독자의 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의 전개는 고전소설의 서사양식에 매우 닮
아있다. 흔히 고전소설이라고 하면 해피엔딩, 권선징악, 이라는 말부터 떠오르는
데, 이것은 전우치전에도 적용되지 못할 말이 아니다. 서양 소설의 베이스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갈등 양상, 혹은 기승전결의 반전 중심에 있다고 할 때에,
동양적 서사의 베이스는? 글쎄. 명확하게 표현은 못하겠고, 연극과 굿의 차이 쯤
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봐야 하지만, 굿은 아무 거리
나 봐도 큰 탈이 없다, 라고 한다면? (굿이라는게 그렇지 않다면, 줄타기라도 괜
찮겠고, 아니면 줄거리 뻔한 심청전 같은 것의 구연장이라고 해도 되겠다.)

전우치가 과연 70년대의 정서인지 조선시대의 정서인지, 그건 70년대에 젖병을
빨고 조선시대에는 뭐하고 있었을지 모를 나로서 판정지을 수가 없다. 다만 전
우치전의 가치는, 그 서사의 방식에 있어서 전통적 방식을 성공적으로 살려내었
다고 하겠다. 이것에 비하자면 고증이나 경전, 기타 역사에 관한 작가의 세심한
공부와 고증들이 만들어낸 성과는 오히려 미미하다고 할 정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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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12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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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학이 순수문학적 메세지를 가지게 될 때,
그 메세지는 순문학보다 훨씬 다 강렬한 에너지와 파괴력을 뿜기도 하는데,
그것은 순문학이 돌려말하기, 은유나 상징하기, 말을 아끼기등을 미덕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순문학을 읽는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이 순문학
을 보고서 뭔가를 느끼는 것은 쉽지 않으며,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
지를 제대로 혹은 나름대로 잡아내기란 더욱 어렵다.

한편 장르문학은 훨씬 더 자유스러운 상징적 도구를 쓸 수 있다.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극단적인 상징들을 쓸 수가 있다는 것이 되겠는데,
드래곤라자의 "영원의 숲"에서 보여주는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
퇴마록에 등장한 귀신에 씌워져 서울로 탱크를 모는 충성스런 사단장,
금강불괴가 상징하는 인간성 완성으로서의 금강불괴,
등등이 이런 것이라고 하겠다. 나는 이들이 전하는 메세지의 강렬함과 진지
함이 결코 순수소설의 강렬함에 미치지 못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제는 독자의 경우다. 대중문학을 읽는 독자가, 정신수양이나 인격향상등을
위해서 글을 읽지는 않는다. 전우치전에 나오는 숱한 경전 말씀이나, 드래곤
라자에서 작가가 등장인물을 통해 직접 등장한 부분, 들에 이르면 누워서 방
바닥을 딩굴며 책을 보던 독자들은 미련없이 그 부분을 건너뛰고, 칼싸움을
하거나 마법을 부리는 장으로 건너뛴다. 그래서 아무래도, 대중소설이 독자
에게 메세지를 전하는 방법은 순수문학보다 훨씬 교묘하고 기술적이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이다.

드래곤라자는 생전 처음으로 읽어본 환타지이므로 (그나마 다 읽지도 못했으
므로) 할 말이 많을 수는 없지만, 무협에 대해서 떠오른 생각으로 말하자면,
아무래도 무협은 보다 보수적인 것이 아니냐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가령 팔십
년대의 무협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영웅담들은 팔십년대 젊은이들의 생각이라
기보다는 새마을운동시대 맨주먹으로 돈벌어보세를 외치던 젊은이들의 생각
에 가깝다고 느껴지고, 구십오년 이후 보여지는 무협에서의 사회적 리얼리즘
의 경향들은 구십오년 이후 젊은이들의 생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삼팔육세대
의 방식에 가깝다. 진지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무협의 경우, 대개는 개개의
인간을 탐구한다기보다는 사회에서부터 개인으로 탐구해들어오는 경향이 강
하다고 하겠다. 드래곤라쟈가 개인으로부터 출발해서 사회로 탐구해 나가는
것과는 반대라고 하겠다. (다른 환타지를 좀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함)
이것을 동양의 전통과 서양의 전통에까지 이어본다면. 글쎄. 가능할 수도 있
다고 본다. 개인적 감상이지만, 드래곤라쟈의 처음 얼마를 읽어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우리 세대의 감성에서 서양의 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내가 생각했
던 것보다 높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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