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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전 3
권오단 지음 / 영언문화사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전우치전에서 내
눈을 가장 잡아당긴 것은 서사의 방식이었다. 서양 소설 이론에서의 개연성
어쩌구 하는 것을 끌어들일 경우, 전우치전은 소설도 뭣도 아닌 황당함 뿐이
다. 전우치전의 사건 전개는 개연이나 필연보다 우연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한
다. 우연히 만난 노인이 조선 제일검이더라, 도망가다가 만났는데 풍류문의
후계자더라, 전우치전의 사건 전개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이다. 이
서사가 조금도 짜증나거나 낯설지 않은 까닭은?
전우치전의 내용은 조선시대의 것이라기보다는, 새소년이나 어깨동무에 연재
되던 일지매의 정서라고 느껴진다. 이 정서는 임꺽정과 장길산을 대조해서 읽
었을 때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임꺽정이나 홍길동을 의적의
대명사로 칭해 부름에도 불구하고, 실제 벽초의 임꺽정이나 허균의 홍길동전
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의적의 활약은 구체적이지 못하다. 전우치전(권오단님의
전우치전이 아닌, 고전소설 전우치전)에서도 전우치의 활약은 우리가 생각하는
의적의 모습과 약간의 거리가 있다. 이에 반해 장길산에 등장하는 의적들의
활약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 구체적으로 일치한다. 양반네 집에 쳐들어가서
통쾌하게 무찌르고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는 모습. 아울러 내용중에 등장하는
숱한 경전의 인용, 고전의 인용들은 빛바랜 도덕교과서의 느낌을 준다. 이 경
전 인용구를 읽고서 인생을 반성할 사람이 있는가? 오히려 열명중의 아홉명은
시리얼란에서 이 인용구가 나오기 시작하면 엔터를 눌러 장을 바쁘게 넘겼을
것이다. (나또한 그랬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장황한 인용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인용들은 통채로 하나의 기호가 된다.
장길산의 장황한 민속 재현, 객주의 민요 재현, 혼불의 민속 재현들은 독자의
정밀한 눈길을 받지는 못하지만, 소설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말하자면
한 마디의 수식어쯤이라고 할까? 임꺽정이라고 하면 토속성, 장길산이라고 하
면 사회경제, 객주라고 하면 유장한 우리말, 이라고 붙이는 한마디씩의 수식어
들 말이다. 그래서 전우치전, 이라고 하면 공자님 말씀! 이라는 정도의 수식어
가 떠오르게 하는 인용구라고 할까. 그러나 이 공자님 말씀들은 권위나 엄숙함
보다는 약간의 희극성과 함께 지나간 낡은 것이 주는 정다움을 보여준다. (작
가의 의도에 아마 훨씬 못미치는 해석이 될 듯 하다. 조금 당황스럽게도, 나는
작가가 정말로 독자들에게 옛날식으로 사서삼경을 가르치고 싶은건가? 라는 느
낌을 받았다.)
전우치전의 내용적 측면이 그렇다고 할 때에 형식들은 어떤가? 사건의 전개 방식
그리고 이야기의 서사 방식은 민담 및 구전소설들의 양식과 매우 닮아있다.
사실 전우치전에는 기발한 반전이라고 할 부분이 거의 없다. 한 단락이 시작하는
부분에서 어지간한 독자라면 앞으로 사건 전개가 어떻게 될것인지 대강 짐작을
할 수가 있다. ...이때쯤 누가 나오겠네. 이때쯤 누가 도와주겠네. 하는 식의 짐
작은 글을 읽어가는 중에도 종종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거나
독자의 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의 전개는 고전소설의 서사양식에 매우 닮
아있다. 흔히 고전소설이라고 하면 해피엔딩, 권선징악, 이라는 말부터 떠오르는
데, 이것은 전우치전에도 적용되지 못할 말이 아니다. 서양 소설의 베이스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갈등 양상, 혹은 기승전결의 반전 중심에 있다고 할 때에,
동양적 서사의 베이스는? 글쎄. 명확하게 표현은 못하겠고, 연극과 굿의 차이 쯤
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봐야 하지만, 굿은 아무 거리
나 봐도 큰 탈이 없다, 라고 한다면? (굿이라는게 그렇지 않다면, 줄타기라도 괜
찮겠고, 아니면 줄거리 뻔한 심청전 같은 것의 구연장이라고 해도 되겠다.)
전우치가 과연 70년대의 정서인지 조선시대의 정서인지, 그건 70년대에 젖병을
빨고 조선시대에는 뭐하고 있었을지 모를 나로서 판정지을 수가 없다. 다만 전
우치전의 가치는, 그 서사의 방식에 있어서 전통적 방식을 성공적으로 살려내었
다고 하겠다. 이것에 비하자면 고증이나 경전, 기타 역사에 관한 작가의 세심한
공부와 고증들이 만들어낸 성과는 오히려 미미하다고 할 정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