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장군 1:제1부 -상 - 창비장편역사소설
송기숙 지음 / 창비 / 1989년 10월
평점 :
절판


1.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평론가가 뽑은 해방후 한국소설 50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알만한 역사소설들은 대강 다 목록에 올랐던 걸로 기억난다. 장길산, 혼불, 토지, 태백산맥, 봄날, 객주.... 그 이외에 기억나는 것이 바로 송기숙씨의 녹두장군이었는데, 글에 비해 별로 읽히진 않았다는 기억이 난다. 객주 또한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었지만, 작가인 김주영씨는 칠성사이다 선전에 나올만큼 대중적 주목을 받았나본데, (홍어, 라는 것도 꽤 베스트셀러였지? ) 송기숙씨는 유독, 그 주목이 적은 것 같다. 대학생들이나 돌려보는 자랏골의 비가, 정도?

열권이나 되는 대하소설들에는 나름대로 색깔이 뚜렷하다. 단편으로 보여줄 수 없는 작가의 모든 것들이 통틀어 나열된 역사소설 속에는, 가령 임꺽정이면 잘 차려진 옛날 이야기 밥상 하나 가득이라는 느낌. 봄날은 피맺힌 광주의 절규를 쓰기 위해 자기 명을 깎아가며 망우리 공동묘지를 미친 사람처럼 헤맸다는 착한 소설가의 피끓는 절망과 분노, 장길산에는 정의로 가득 뭉친 우리들이 우리의 손으로 역사를 바꾸고 말겠다는 낭만적이고 힘이 넘치는 긍정, 같은 것 쯔음이 될 텐데,

저마다 그 시대 백성의 가장 낮은 곳을 훑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소설이 많은 데 비해서 진짜로 그 낮은 곳을 훑었다는 느낌이 드는 소설은 몇 없었다. 나는 특히 이 범주에 조정래씨를 넣고 싶다. 그들의 소설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가장 낮게 관찰하려고 애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를 지식인의 냄새가 난다. 가령 태백산맥에서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던 인물인 김범우의 한계를 벗어던지지는 못한다는 느낌이다. 물론 작가는 그 한계를 스스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김범우 스타일의 인물을 빼놓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2.
그래서 송기숙의 녹두장군은 느낌이 색다르다. 녹두장군의 문장은 옛 글의 냄새를 풍기는데, 이 옛 냄새는 김주영이나 황석영의 '우리말 문체'와는 또 느낌이 틀리다. 녹두장군은 1920년대 작가들이 쓴 문장과 여러 가지로 느낌이 비슷하다. 짧고 간결한 문체로 툭툭 던지듯 액센트 없이 흐르는 문장을 별 생각없이 읽다가, 사건이 어떻게 넘어갔는지 제대로 짚지 못할 때가 가끔 있다. 또 녹두장군에는 '심리 묘사' 라는 것이 거의 없다. 어떤 인물의 내면을 보여준다기보다는 그저 흘러가는데로 겉을 훑어보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내가 송기숙씨의 글에서 1920년대를 느끼는 이유는, 헌책방에서 산 그 책이 1920년대책처럼 빛이 바랬기 때문일 수도 있다. -_-)

송기숙씨는 동학란을 동학이 아닌 농민 봉기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나야 잘 모르긴 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는 느낌이다.

3.
녹두장군에는 '착한 관원'이 없다. 하지만 이건 조정래씨의 소설에 '착한 우익'이 없는 것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착한 우익'이 없다는 것은 우선 사실과 다를 것이고, 그리고 우익이 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착한 관원이 없는 이유는 너무 명백해 보인다. 돈 내고 수령 임직 받아서 석달 있으면 갈리기 전에 본전 뽑아야 된다는 그 시대 실상이라면, 설명이 되고도 남는다.

4.
관원들이 이끈 역졸이 고부 부녀자 '전체' 를 다 겁탈하는 장면이 나온다. 열 살 짜리 어린아이까지 겁탈당했다는 그 이야기들을 사료 뭉치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어이가 없고 치가 떨리는 이야기였다. 몸을 버리면 목을 매던 시절에, 명색 대하소설에서 없는 이야기를 했을리는 없는데...

함께 그런 이야기도 있었다. 그 마을 남자들이 그 일을 조용히 덮어버렸다고.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을 것 같다. 정말, 덮어둘 수도 덮어두지 않을 수도 없는 문제인 것 같다.

5.
역사소설속에서 가끔 그렇게 훑고 지나가는 사건들을 현재로 추체험하면 정말 상상하기도 힘든 무서운 일이 된다. 나 자신에게 추체험하면 더 무서운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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