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12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1998년 7월
평점 :
품절


대중문학이 순수문학적 메세지를 가지게 될 때,
그 메세지는 순문학보다 훨씬 다 강렬한 에너지와 파괴력을 뿜기도 하는데,
그것은 순문학이 돌려말하기, 은유나 상징하기, 말을 아끼기등을 미덕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순문학을 읽는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이 순문학
을 보고서 뭔가를 느끼는 것은 쉽지 않으며,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
지를 제대로 혹은 나름대로 잡아내기란 더욱 어렵다.

한편 장르문학은 훨씬 더 자유스러운 상징적 도구를 쓸 수 있다.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극단적인 상징들을 쓸 수가 있다는 것이 되겠는데,
드래곤라자의 "영원의 숲"에서 보여주는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
퇴마록에 등장한 귀신에 씌워져 서울로 탱크를 모는 충성스런 사단장,
금강불괴가 상징하는 인간성 완성으로서의 금강불괴,
등등이 이런 것이라고 하겠다. 나는 이들이 전하는 메세지의 강렬함과 진지
함이 결코 순수소설의 강렬함에 미치지 못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제는 독자의 경우다. 대중문학을 읽는 독자가, 정신수양이나 인격향상등을
위해서 글을 읽지는 않는다. 전우치전에 나오는 숱한 경전 말씀이나, 드래곤
라자에서 작가가 등장인물을 통해 직접 등장한 부분, 들에 이르면 누워서 방
바닥을 딩굴며 책을 보던 독자들은 미련없이 그 부분을 건너뛰고, 칼싸움을
하거나 마법을 부리는 장으로 건너뛴다. 그래서 아무래도, 대중소설이 독자
에게 메세지를 전하는 방법은 순수문학보다 훨씬 교묘하고 기술적이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이다.

드래곤라자는 생전 처음으로 읽어본 환타지이므로 (그나마 다 읽지도 못했으
므로) 할 말이 많을 수는 없지만, 무협에 대해서 떠오른 생각으로 말하자면,
아무래도 무협은 보다 보수적인 것이 아니냐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가령 팔십
년대의 무협에서 보여주는 일련의 영웅담들은 팔십년대 젊은이들의 생각이라
기보다는 새마을운동시대 맨주먹으로 돈벌어보세를 외치던 젊은이들의 생각
에 가깝다고 느껴지고, 구십오년 이후 보여지는 무협에서의 사회적 리얼리즘
의 경향들은 구십오년 이후 젊은이들의 생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삼팔육세대
의 방식에 가깝다. 진지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무협의 경우, 대개는 개개의
인간을 탐구한다기보다는 사회에서부터 개인으로 탐구해들어오는 경향이 강
하다고 하겠다. 드래곤라쟈가 개인으로부터 출발해서 사회로 탐구해 나가는
것과는 반대라고 하겠다. (다른 환타지를 좀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함)
이것을 동양의 전통과 서양의 전통에까지 이어본다면. 글쎄. 가능할 수도 있
다고 본다. 개인적 감상이지만, 드래곤라쟈의 처음 얼마를 읽어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우리 세대의 감성에서 서양의 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내가 생각했
던 것보다 높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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