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거가 국민의 당당한 권리라는 말은, 민주주의라는 허울이 만든 환상의 절정이다, 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허울이다.

2.
요즘 드는 생각은, 사회는 그저 거대한 인격의 집합인 것 같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 개개인은, 그 인격의 한 부분인 것 같다. 

한 사회 조직은 인격의 한 부분을 대표한다. 예를 들자면,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던 정철이 관동에 살고 싶네를 읊조리다가 임금님 보고싶네를 떠들다가... 모순된 것이 마구 어울려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인격이다. 어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당연하기까지 하다. 인간성이란...

사회도 그와 같다. 인간성의 특정한 부분이 발달된 사람이 모이는 집합이 정치계이고, 또다른 어떤 부분이 발달된 사람이 모이는 것이 경제이고, 또 어떤 부분이 깡패이고... 등등.

3.
그래서 나는 소위 "정치인은 다 싫어" 류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그냥, 인간성의 한 부분의 현현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도 욕할 수 없다. (심지어 살인범 조차...) 뭐, 별로 좋은 것은 아니다. 감성이 예민하고 생각이 많으면 인생이 피곤할 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생이 조금씩 덜 피곤해진다.

4.
나는 소위 '논리'라는 것을 별로 믿지 않는다. 삼단논법, 뭐 그런 순수히 학교에서 배우는 것 말고. 그건 마치 타자연습과 같은 거니까. 내가 믿지 않는 건, 흔히 말하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논리적으로 설명...',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논리적 대응...' 이런 것들 말이다.

언제나 결론을 먼저 내리는 것은 감성이다. 논리는 감성적 결론을 수습하고 포장하기 위한 화려한 말빨일 뿐이다. 논리는 서로가 정해놓은 규칙으로 짜고 치는 놀이일 뿐이다. 논리가 안 통하는 사람은(ex.김대중은 빨갱이야! 라고 주장하는 노인네...) 사고가 열등한 것이 아니라 감정에 솔직할 뿐이다. 라고 생각한다.

감성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성장 환경, 부모님의 성장 환경, 친한 친구들의 생활, 자기가 아침에 일어나야 할 시간이나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의 숫자, 이런 것들이리라.

5.
선거가 정치를 바꾼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선거가 인간 개개인의 삶을 바꾼다는 것은 아무래도 제도를 만드는 자들이 주입한 환상인 것 같다. 정치가 내 삶에 끼치는 영향 보다, 나우누리 하이텔이 내 삶에 끼친 영향이 몇십 배 더 클 꺼다.  

6.
투표하자! 라는 젊은이들의 구호는 어쩐지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알았다! 난 한나라당에 투표하러 갈께." 라고 종종 대답하고 싶어진다. 우리 세대가 나이 오륙십이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종류의 파쇼가 되어있을까?

7.
늘 느끼는 거지만, 정치에 관심없다고 하면서 늘 정치에 대해 이렇게 한 마디씩 주절거리는 걸 보면, 나는 아무래도 비정치류가 아니라 반정치류인 것 같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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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사촌 누나가 이민을 갔다. 사촌누나는 나이 마흔 즈음이고, 애가 셋이다. 미용사로 오래 일했고, 영어는 못 한다. 국내에선 빚이 좀 있다고 한다.

매형은 사촌 누나보다 두어 살 위이다. 떡대가 좋고 건달끼도 좀 있다. 모르긴하지만 술 먹으면 가끔 마누라도 패고 할테다. 매형은 치매가 있는 노모 때문에 함께 이민길을 나서지 못했다.

건달끼 있는 매형의 곁에서 열두어살 먹은 사내아이가 제 아빠와 헤어지는게 서운해서 울었다.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던 중이었는데, 매형은 밥을 절반도 비우지 못하고 얼굴이 벌개서 화장실만 들락거렸다. 대전에서부터 봉고를 타고 함께 올라왔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혼자 돌아가게 될 것이다.

공항 게이트의 간유리 틈 사이로, 애들 나가는 모습을 보겠다며 쪼그리고 앉아있는 건달끼 있는 매형을 보았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장면중의 하나다.

 

우리가 과거 시대를 야만적이라고 말하는 가장 큰 근거의 하나는, 가족간의 생이별이다. 군역에 의해, 전쟁에 의해, 이념에 의해, 가난과 궁핍에 의해, 노예제도에 의해 가족들은 생이별했다.

우리 시대는 과연 덜 야만적인가. 자의로 하는 생이별과 타의로 하는 생이별에 얼마만큼 차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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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기를 느낀다는 뜻이다.
몸살. 몸에 살이 끼었다는 뜻이다.

아픈 사람은 예민하다.

감기와 몸살에는 약이 없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약이든 뭐든의 힘을 빌어서 해결할 수도 없다. 그저 이 순간이 지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목이 깔깔하다. 두어 해는 감기에 전혀 걸리지 않았는데, 벌써 석달만에 세 번째 감기에 걸리려는 느낌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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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맨스를 몇 권 읽어봤는데, 그리고 지금 꽤 마음에 드는 작가의 로맨스를 읽는 중인데, 역시나 불편하다.

내가 로맨스가 불편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로맨스가 여성적 공상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원 무림의 혈투, 오케이 목장의 총싸움은 명백히 공상이라고 느낀다. 로드니아 대륙에서 드래곤 사냥이라든지, 고려시대의 농민봉기라든지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로맨스는 도무지 그렇지가 않다. 초절정 울트라 냉미남에다 돈도 많고 능력도 많으면서 여성 편력도 화려하고 여자를 리드할 줄도 알고 그러면서도 바람기때문에 한 여자에게는 남지 못하다가,한 눈에 여주인공을 사로잡고... 이런 류의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허무맹랑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예전에 무협작가 진산(여자분이다)님이, 로맨스의 여성적 공상을 비호(?) 하면서, 80년대 무협에서, 마지막에는 꼭 주인공의 첩 세넷이서 '형님 많이 굶으셨으니까 오늘은 형님이 하세요' '아니야, 니가 거시기 맛 못 봐서 얼굴이 파리하니까 오늘은 니가 맛 보시게'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말도 안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문제는, "형님 많이 굶으셨는데..." 는 말도 안된다는걸 알겠는데, 초절정 울트라 냉미남은 말이 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_-; 어디서 이런 넘 한테 걸려서 애인 뺏길 것 같고, 이런 남자 있으면 여자들은 홀라당 다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여자들은 바보 같고... -_-;;;

머 암튼 그렇다. -_-

 

2.

그러므로 나는 로맨스의 선정성을 짐작할 수 없다. 여자들은 이걸 읽고서 얼마만큼의 성적 흥분-_-; 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궁금하던 것이 있다. 미디어마다 여자 누드 사진은 날개돋힌 듯 팔리는데, 왜 남자 누드는 안 팔릴까? 여자가 헥헥거리는 것을 클로즈업하는 포르노는 많은데, 왜 남자가 헥헥거리는 걸 클로즈업하는, 요는 여성 관객 대상의 포르노는 별로 없을까? 여성이 성적으로 모욕감을 느끼는 상황은 많고도 다양한데 왜 남성이 성적으로 모욕을 느끼는 상황은 훨씬 적을까? 등등...

남성이 성적 지배자이고 여성은 피착취자이다... 라고 한다면 물론 그렇겠기는 하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꺼다. 요는, '포르노'라는 기준 자체가 남성 위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회적으로 금지된 포르노는 모두, 남성이 즐기는 포르노이다. 여성이 즐기는 포르노는 금지된 적이 없다. (유통되지도 않는다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유통되고 있을꺼다. 인간 본능과 관련된 것이므로, 없을리가 없다. 하지만 여성적 포르노가 뭔지는 알려져있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로맨스를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야말로, 여자가 남성적 포르노를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정말로 남녀의 정치사회적 지위가 같아지는 순간에는, 로맨스도 포르노와 동일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조심스럽게 구할 수 있는....... -_-;

라는 생각을 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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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자들이 쉽게 써도 될 말을 어렵게 쓰는 것을 싫어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신화' 그리고 '담론'이라는 표현이다. 굉장히 뽀대있어 보이고, 뭔가 있어보이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 말 자체에 대해 열심히 해설해서 책 몇 권을 쓰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책을 예전에 두어 권 읽은 것도 같고 읽지 않은 것도 같다. 아무튼 별 대단한 뜻이 아니라는 말로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나 스스로도 무식자와 식자의 이분법으로 나누자면 식자에 속하는지라, 가끔 그 싫은 말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금번 탄핵 어쩌고 사태를 보면서 '신화'라는 말을 쓰고 싶어진 것이다.

2. 

쓰고 싶은 대상은 바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신화 투성이인 것 같다. 검증된 적은 없으되 남들의 입과 입을 통해서 '좋다'라고만 알려진, 바로 그 민주주의다.

이런 젠장. 쓰다보니 내가 소위 '신화'라는 표현이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_-; 아무튼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신화라는 표현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해서다.

민주주의는 좋은 것인가? 여기에 기꺼이 좋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국민윤리 교육을 건실하게 받은 사람이다. 보수적으로 국민윤리를 열심히 공부했다면,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의 반댓말이기에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보적으로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라면, 민주주의는 독재의 반댓말이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동전의 양면인 것과 같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민주주의가 과연 좋은 것인지가 의심스럽다.

3.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서양에서 베껴왔다. 서양 역사 몇백 년 동안, 임금 모가지도 자르고, 백성들 데모하다가 피도 흘리고, 탈출도 하고 혁명도 하고 쿠데타도 하고 전쟁도 하고, 그러면서 발전시켜온 온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베껴왔다.

베끼기의 문제점은 맥락을 모른다는 것이다. 로뎅-오뎅-덴뿌라. 덴뿌라라 이거다. 요는 한국 사회의 맥락, 의식, 전통, 역사, 관념, 기타 등등과 민주주의는 전혀 혼합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비슷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민주주의가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쎄, 서양에서는 좋은 제도일 수도 있지.

민주주의의 대안은 뭐냐고? 글쎄말이다. 대안이 뭔지 안다면 난 이미 국회에 나갔을꺼다. 대통령 탄핵하고서 그 대안대로 하려고 하고 있겠지. 아니면 쿠데타를 일으켰든지. ㅋㅋ

4.

뭐 아무튼 동양이고 서양이고간에, 우리가 기대하는 민주주의는 존재하고 있지 않다. 민주를 주장하는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존재하는 것은 과두정치 뿐이다. 

쓰면서 생각하지만, 확실히 나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라 정치를 싫어하는 사람에 가까운 것 같다. (뭐 그렇지만 아는 건 역시 없다. 심지어 나는 민주당과 열린 우리당의 차이도 오늘에야 알았다. -_- 내일 까먹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절차를 이미 과거에 몇 번 밟았는지도 잘 모르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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