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1 - 봉단편 홍명희의 임꺽정 1
홍명희 지음 / 사계절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임꺽정을 두번 읽은 지금, 세간의 평에 대한 몇 가지의 궁금증이 있다. 그 중 첫째는 임꺽정이 <우리 말의 보고> 라는 것이다.

임꺽정을 처음 읽었을 때 노트에다가 <문체가 너무 좋다> 운운을 적은 것이 있던데, 기실 정말로 내가 좋다고 느꼈었는지 아니면 좋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듣고서 읽어서 좋다고 느꼈었는지 약간의 불확실함이 있다.

구수한 토박이말이 많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예스러운 말이 주는 단정함도 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시대를 관통할만큼 대단한 것인가? 라는 자문을 해보았다.
홍명희가 쓰는 토박이말은, 말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김주영이나 이문구씨만큼 풍성하지 못하다. 김유정의 토박이말보다 굳이 대단하게 구수하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한편, 예스러운 말의 단정함이라는데에 있어서, 적어도 1970년대생인 나에게 옛날에 쓰인 글에는 다 옛스러운 단정함이 있고, 나는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가령 이광수나 심훈 김성한등이 쓰는 말도 간결하고 단정하기 그지없다.

분석을 하자면 이런데, 분명히 읽고 나서 남는 정서에는 뭔지 모를 구수함이 있단 말이다. 고개를 몇 번 갸웃거렸었는데... 이 질문은 소설가 김남일씨의 평론을 보고서 해결되었다. (김남일씨가 초독시 느꼈던 당황스러움도 나와 같다는 것도 알았다.)

김남일씨가 제시하는 요소로는 첫째. 임꺽정의 토속성은 문장미학이 아니다. 문장에서 오는 구수함이 아니라 전체의 정서에서 오는 것이다. 둘째. 홍명희는 이야기 할아버지의 위치에 서서 조곤조곤 청중을 쥐었다 풀었다 하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부분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는 분은, 저 옆의 링크, 로 사계절 출판사 홍명희 문학제로 들어가서, 김남일씨의 관련글을 찾아보시길.


궁금증이 또 하나 있다. 이건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다.
과연 임꺽정이 영웅인가? 서민의 희망을 대표하는 시대의 영웅인가?
여기에 대해서 모두가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임꺽정을 두번째 읽으면서, 정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놈, 이렇게 나쁜 놈이었다니. 가령 글 안에서도, 사람 목숨은 파리같이 여기면서 날개다친 벌레에는 눈물을 떨구는 괴퍅함 운운한 부분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 부하고 마누라고 말 안들으면 한 방에 보내버리는, 도적놈 두목일 뿐이었다. 떠올리자면, 장길산처럼 <의적행각>을 벌이는 일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배고픈 백성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낭만적인 의적이 되었던 적이 없었다.

임꺽정이 한 유일한 혁명적인 행동이라면, 신분사회에서 <왕> 다름없는 권위와 행세를 누렸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소설속의 임꺽정이 영웅이 된다면, 오늘날의 영웅은 <세계는 넓고...>의 김우중이나, <시련은 있어도...>의 정주영 같은 사람이 아닐까?

즉, 지금까지로는, 드는 생각은, 임꺽정을 민중의 영웅으로 만든 것은 소설 임꺽정이 아니라 저자 홍명희를 둘러싼 여러 이데올로기적 문제들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홍명희가 묘사한 임꺽정은 천하의 장사이자 도둑놈중의 제왕일 뿐이다.

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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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 2005-02-0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양서 새살림 차린후의 행동거지나 8권에 굿구경을 가겠다는 것을 굳이 못가게 하는 장면이나..임꺽정은 민중의 대표라는 이미지보다는 당시 사람들의 도덕적 윤리기준보다 좀 더 악독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당시 보쌈치기나 어린 아이를 납치했다는 풍속을 기준으로). 개인적으로 청석골과 같은 산채의 자유로움을 부러워 하지만 홍명희 선생의 청석골은 분명 임꺽정의 공화국같은 냄세가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