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맨스를 몇 권 읽어봤는데, 그리고 지금 꽤 마음에 드는 작가의 로맨스를 읽는 중인데, 역시나 불편하다.
내가 로맨스가 불편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로맨스가 여성적 공상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원 무림의 혈투, 오케이 목장의 총싸움은 명백히 공상이라고 느낀다. 로드니아 대륙에서 드래곤 사냥이라든지, 고려시대의 농민봉기라든지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로맨스는 도무지 그렇지가 않다. 초절정 울트라 냉미남에다 돈도 많고 능력도 많으면서 여성 편력도 화려하고 여자를 리드할 줄도 알고 그러면서도 바람기때문에 한 여자에게는 남지 못하다가,한 눈에 여주인공을 사로잡고... 이런 류의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허무맹랑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예전에 무협작가 진산(여자분이다)님이, 로맨스의 여성적 공상을 비호(?) 하면서, 80년대 무협에서, 마지막에는 꼭 주인공의 첩 세넷이서 '형님 많이 굶으셨으니까 오늘은 형님이 하세요' '아니야, 니가 거시기 맛 못 봐서 얼굴이 파리하니까 오늘은 니가 맛 보시게'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말도 안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문제는, "형님 많이 굶으셨는데..." 는 말도 안된다는걸 알겠는데, 초절정 울트라 냉미남은 말이 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_-; 어디서 이런 넘 한테 걸려서 애인 뺏길 것 같고, 이런 남자 있으면 여자들은 홀라당 다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여자들은 바보 같고... -_-;;;
머 암튼 그렇다. -_-
2.
그러므로 나는 로맨스의 선정성을 짐작할 수 없다. 여자들은 이걸 읽고서 얼마만큼의 성적 흥분-_-; 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궁금하던 것이 있다. 미디어마다 여자 누드 사진은 날개돋힌 듯 팔리는데, 왜 남자 누드는 안 팔릴까? 여자가 헥헥거리는 것을 클로즈업하는 포르노는 많은데, 왜 남자가 헥헥거리는 걸 클로즈업하는, 요는 여성 관객 대상의 포르노는 별로 없을까? 여성이 성적으로 모욕감을 느끼는 상황은 많고도 다양한데 왜 남성이 성적으로 모욕을 느끼는 상황은 훨씬 적을까? 등등...
남성이 성적 지배자이고 여성은 피착취자이다... 라고 한다면 물론 그렇겠기는 하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꺼다. 요는, '포르노'라는 기준 자체가 남성 위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회적으로 금지된 포르노는 모두, 남성이 즐기는 포르노이다. 여성이 즐기는 포르노는 금지된 적이 없다. (유통되지도 않는다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유통되고 있을꺼다. 인간 본능과 관련된 것이므로, 없을리가 없다. 하지만 여성적 포르노가 뭔지는 알려져있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로맨스를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야말로, 여자가 남성적 포르노를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정말로 남녀의 정치사회적 지위가 같아지는 순간에는, 로맨스도 포르노와 동일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조심스럽게 구할 수 있는....... -_-;
라는 생각을 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