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토노트 1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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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동호회에서 베르베르의 뇌가 재밌다고 했더니 사람들 반응이 "나원참 살다보니 그런 유치뽕을 재밌다고 하는 사람도 있네" 정도였다.

지금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한다.
타나토노트는 내가 읽어본 소설중에 정말 최고로 유치뽕뽕뽕한 소설이었다. 도대체 뭘 하자는건지...

그런데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인터넷 서점의 타나토노트에 대한 촌평들을 읽어보니,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 어쩌고 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뭐 사실 기발하다고 부를 면이 없지는 않았다고 치더라도... 그 기발함은 소설적인 기발함이나 서사적인 기발함이 아니라 상상의 기발함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잡문이라고 하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

뇌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내가 예전에 열심히 읽던
광기의 역사를 기본 사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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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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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 조창인

지독하게 처절한 궁상이다.
선정성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예전부터 나는 선정성이라는 말 뜻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예술이냐? 외설이냐?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선정성이란, 인간이라면 가질 수 밖에 없는 본성에 대해 지독할 정도로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본성이란 말은 물론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가시고기가 매우 선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선정성은 다행히 대중에게 찬사를 받는 선정성이다. 그래서 이 책은 훌륭한 베스트 셀러이다.

잘 쓴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 어린아이의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 : 어른이 흉내낸 어린아이라는 표시가 너무 강하다
그리고 문장 : 가끔씩 끼여드는 대책없이 낯 간지러운 문장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가는 소설 속에서
"돈을 벌기 위해 꽃그림을 붙여서 간질간질하게 쓰는 시집" 에 대한 성토를 한다.
그러나 이 소설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사춘기 소녀의 설레임과 동급의 감정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걸리는 것이 있지만,

적어도 글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글쎄다. 동급으로 놔도 괜찮을 것 같다.

같은 대중소설이지만, 예전의 "아버지" 와 비교하자면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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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차가운 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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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차가운 손 - 한강

한강은 확실히 동년배의 여자 작가들과 틀리다는 느낌이다.
여러번째 하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젊은 여자작가들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개 그들이 천착하는 - 일상에 묻힌 내면의 고통이라는 것들은 엄살이라고 느낀다.
글감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정상인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흉내내는 불편함이 있다.
또는 그게 아니라면, 단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소위 말하는 코드가 틀린, 그런
까닭일 수 있을테다.

한강은 그렇지 않다.
그녀의 글쓰기에는 진짜 고통이 숨어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한강의 문장은, 문장 한 줄 한 줄은,
화려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고 가식적이지 않다. 단정하다거나 깔끔하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어딘지 처연스럽다. 한두 문장만 읽어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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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접검 1
고룡 지음 / 세계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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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룡 작품으로 읽은 것은 다정검객무정검과 육소봉전기 정도입니다. 초류향도 읽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요. 암튼 몇 권 안 읽은 셈이죠.

이번에 읽은 유성호접검은 파일로 된 것인데, 재미있게도 무공 초식 이름이나 한문들을 모두 중국어로 읽었더군요. 그래서 지금도 한문 이름은 잘 모르겠고, 까오라오따니 라오뽀오니 하는 식으로만 기억납니다. 최근 번역판은 아닐텐데, 이렇게 된 것을 보면 신기하네요. 김용옥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던 바 있는데, 이렇게 번역이 되어야 맞는 것 같고, 그리고 이렇게 쓰는 추세이기도 하죠. 그런데 아주 옛날에 이미 이런 식으로 했다는 게 재미있다는거죠.

아무튼.

고룡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 사람은 정말 인생을 안다" 라는 생각이 팍팍 듭니다. 적당히 냉소적이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어쩐지 삶을 모조리 꿰뚫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문장들. 한 문장 한 문장 떼어다가 지하철 화장실이라든지 버스 시트 광고 아래에 "오늘의 명언" 이라고 써서 붙여도 될만한 것들. 그래서 진산님이 예전에 "고룡을 아는 자 인생을 안다" 와 비슷한 표현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성호접검 2권 정도를 읽으면서, 과연 고룡이 인생을 아는가? 에 대한 자문을 했습니다. 고룡은 인생을 알고 나는 모른다, 라고 했을 때, 내가 모르는 무엇을 아는가? 라는 생각이 든 것이죠.

고룡의 글에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경구" 들은 대부분, 친구를 믿으면 배신을 당한다는 종류, 또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관조적인 선언들이었습니다. 고룡은 이러한 이야기를 할 때 결코 주장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묘사하거나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말할 뿐입니다.

고룡의 글은 불편합니다. 고룡을 읽을 때면 정신없이 빨려들어가되, 결코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지는 못합니다. 글을 다 읽었을 때도 뭔지 모를 꺼림찍함이 남습니다.

그 꺼림찍함은, 고룡의 "경구"에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룡의 문장에는 결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글 속에서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 라는 문장은 마치 "사람은 늙으면 죽는다"와 같습니다. 그래서 찬성을 하기에는 우습고, 반대를 하자면 스스로가 괜시리 인생을 모르는 철부지같은 느낌이 듭니다. 고룡이 인생관을 펼쳤을 때 "나는 그렇지 않은데" 라고 대답하면, 그것은 곧 나 스스로 인생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고룡의 글이 삶의 한 단면을 제시는 하겠지만, 그것은 고룡만이 가진 미덕은 아닐텐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 하는 생각은, 고룡은 인생을 아는 것이 아니라 글 쓰는 법을 안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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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1 - 조국의 딸 한수산 장편소설 1
한수산 지음 / 해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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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씨가 까마귀라는 대하소설을 쓴다고 할 때 적잖게 기대를 했습니다.
서사적인 시선이 아닌 (조금 교과서적이긴 하지만) 감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역사는 어떤 것일까...
(평소 한수산씨의 감성과는 세대차이가 난다고 생각한 편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전혀 독특한 느낌이니까요)

뭐 읽고난 뒤의 감상을 짧게 요약하라면, 실망인 편이라고 하겠네요.

일단 한수산씨의 감성이라는 것은 시선의 문제가 아니라 소재의 문제라는 느낌을 받았구요 (즉, 감성적인 소재를 다룰 뿐 감성적인 시선을 가지지는 않았다는,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을때면 `교과서적인 감성`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는)

그래서 소재에 대해 그냥 평이하기 풀어놓았다는 느낌...
확실히 장편소설을 풀어나가는 능력은 다른 대하작가들보다 모자라다고 느꼈습니다.

소재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구태의연할 수 밖에 없겠더군요. - 우리는 일제 36년을 잊어서는 안되고 그곳에 묻힌 혼령을 위로해야 하고...
이제 일제시대는 현실과 충분히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정신대 할머니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찬성이나 반대가 의미가 없는 시점이라고 하면 말이 되려나.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피폭자의 후손 등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면 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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