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접검 1
고룡 지음 / 세계 / 1993년 5월
평점 :
품절


고룡 작품으로 읽은 것은 다정검객무정검과 육소봉전기 정도입니다. 초류향도 읽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요. 암튼 몇 권 안 읽은 셈이죠.

이번에 읽은 유성호접검은 파일로 된 것인데, 재미있게도 무공 초식 이름이나 한문들을 모두 중국어로 읽었더군요. 그래서 지금도 한문 이름은 잘 모르겠고, 까오라오따니 라오뽀오니 하는 식으로만 기억납니다. 최근 번역판은 아닐텐데, 이렇게 된 것을 보면 신기하네요. 김용옥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던 바 있는데, 이렇게 번역이 되어야 맞는 것 같고, 그리고 이렇게 쓰는 추세이기도 하죠. 그런데 아주 옛날에 이미 이런 식으로 했다는 게 재미있다는거죠.

아무튼.

고룡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 사람은 정말 인생을 안다" 라는 생각이 팍팍 듭니다. 적당히 냉소적이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어쩐지 삶을 모조리 꿰뚫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문장들. 한 문장 한 문장 떼어다가 지하철 화장실이라든지 버스 시트 광고 아래에 "오늘의 명언" 이라고 써서 붙여도 될만한 것들. 그래서 진산님이 예전에 "고룡을 아는 자 인생을 안다" 와 비슷한 표현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성호접검 2권 정도를 읽으면서, 과연 고룡이 인생을 아는가? 에 대한 자문을 했습니다. 고룡은 인생을 알고 나는 모른다, 라고 했을 때, 내가 모르는 무엇을 아는가? 라는 생각이 든 것이죠.

고룡의 글에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경구" 들은 대부분, 친구를 믿으면 배신을 당한다는 종류, 또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관조적인 선언들이었습니다. 고룡은 이러한 이야기를 할 때 결코 주장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묘사하거나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말할 뿐입니다.

고룡의 글은 불편합니다. 고룡을 읽을 때면 정신없이 빨려들어가되, 결코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지는 못합니다. 글을 다 읽었을 때도 뭔지 모를 꺼림찍함이 남습니다.

그 꺼림찍함은, 고룡의 "경구"에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룡의 문장에는 결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글 속에서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 라는 문장은 마치 "사람은 늙으면 죽는다"와 같습니다. 그래서 찬성을 하기에는 우습고, 반대를 하자면 스스로가 괜시리 인생을 모르는 철부지같은 느낌이 듭니다. 고룡이 인생관을 펼쳤을 때 "나는 그렇지 않은데" 라고 대답하면, 그것은 곧 나 스스로 인생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고룡의 글이 삶의 한 단면을 제시는 하겠지만, 그것은 고룡만이 가진 미덕은 아닐텐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 하는 생각은, 고룡은 인생을 아는 것이 아니라 글 쓰는 법을 안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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