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차가운 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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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차가운 손 - 한강

한강은 확실히 동년배의 여자 작가들과 틀리다는 느낌이다.
여러번째 하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젊은 여자작가들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개 그들이 천착하는 - 일상에 묻힌 내면의 고통이라는 것들은 엄살이라고 느낀다.
글감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정상인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흉내내는 불편함이 있다.
또는 그게 아니라면, 단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소위 말하는 코드가 틀린, 그런
까닭일 수 있을테다.

한강은 그렇지 않다.
그녀의 글쓰기에는 진짜 고통이 숨어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한강의 문장은, 문장 한 줄 한 줄은,
화려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고 가식적이지 않다. 단정하다거나 깔끔하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어딘지 처연스럽다. 한두 문장만 읽어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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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접검 1
고룡 지음 / 세계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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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룡 작품으로 읽은 것은 다정검객무정검과 육소봉전기 정도입니다. 초류향도 읽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요. 암튼 몇 권 안 읽은 셈이죠.

이번에 읽은 유성호접검은 파일로 된 것인데, 재미있게도 무공 초식 이름이나 한문들을 모두 중국어로 읽었더군요. 그래서 지금도 한문 이름은 잘 모르겠고, 까오라오따니 라오뽀오니 하는 식으로만 기억납니다. 최근 번역판은 아닐텐데, 이렇게 된 것을 보면 신기하네요. 김용옥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던 바 있는데, 이렇게 번역이 되어야 맞는 것 같고, 그리고 이렇게 쓰는 추세이기도 하죠. 그런데 아주 옛날에 이미 이런 식으로 했다는 게 재미있다는거죠.

아무튼.

고룡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 사람은 정말 인생을 안다" 라는 생각이 팍팍 듭니다. 적당히 냉소적이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어쩐지 삶을 모조리 꿰뚫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문장들. 한 문장 한 문장 떼어다가 지하철 화장실이라든지 버스 시트 광고 아래에 "오늘의 명언" 이라고 써서 붙여도 될만한 것들. 그래서 진산님이 예전에 "고룡을 아는 자 인생을 안다" 와 비슷한 표현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성호접검 2권 정도를 읽으면서, 과연 고룡이 인생을 아는가? 에 대한 자문을 했습니다. 고룡은 인생을 알고 나는 모른다, 라고 했을 때, 내가 모르는 무엇을 아는가? 라는 생각이 든 것이죠.

고룡의 글에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경구" 들은 대부분, 친구를 믿으면 배신을 당한다는 종류, 또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관조적인 선언들이었습니다. 고룡은 이러한 이야기를 할 때 결코 주장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묘사하거나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말할 뿐입니다.

고룡의 글은 불편합니다. 고룡을 읽을 때면 정신없이 빨려들어가되, 결코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지는 못합니다. 글을 다 읽었을 때도 뭔지 모를 꺼림찍함이 남습니다.

그 꺼림찍함은, 고룡의 "경구"에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룡의 문장에는 결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글 속에서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 라는 문장은 마치 "사람은 늙으면 죽는다"와 같습니다. 그래서 찬성을 하기에는 우습고, 반대를 하자면 스스로가 괜시리 인생을 모르는 철부지같은 느낌이 듭니다. 고룡이 인생관을 펼쳤을 때 "나는 그렇지 않은데" 라고 대답하면, 그것은 곧 나 스스로 인생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고룡의 글이 삶의 한 단면을 제시는 하겠지만, 그것은 고룡만이 가진 미덕은 아닐텐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 하는 생각은, 고룡은 인생을 아는 것이 아니라 글 쓰는 법을 안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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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1 - 조국의 딸 한수산 장편소설 1
한수산 지음 / 해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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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씨가 까마귀라는 대하소설을 쓴다고 할 때 적잖게 기대를 했습니다.
서사적인 시선이 아닌 (조금 교과서적이긴 하지만) 감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역사는 어떤 것일까...
(평소 한수산씨의 감성과는 세대차이가 난다고 생각한 편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전혀 독특한 느낌이니까요)

뭐 읽고난 뒤의 감상을 짧게 요약하라면, 실망인 편이라고 하겠네요.

일단 한수산씨의 감성이라는 것은 시선의 문제가 아니라 소재의 문제라는 느낌을 받았구요 (즉, 감성적인 소재를 다룰 뿐 감성적인 시선을 가지지는 않았다는,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을때면 `교과서적인 감성`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는)

그래서 소재에 대해 그냥 평이하기 풀어놓았다는 느낌...
확실히 장편소설을 풀어나가는 능력은 다른 대하작가들보다 모자라다고 느꼈습니다.

소재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 "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구태의연할 수 밖에 없겠더군요. - 우리는 일제 36년을 잊어서는 안되고 그곳에 묻힌 혼령을 위로해야 하고...
이제 일제시대는 현실과 충분히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정신대 할머니들이 있기는 합니다만...
찬성이나 반대가 의미가 없는 시점이라고 하면 말이 되려나.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피폭자의 후손 등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면 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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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인형 1
장경 지음 / 청어람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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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여점에 오랜만에 들렸다. 장경님의 성라대연을 빌려볼 생각이었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황금인형을 뽑아왔다. 작가의 말 - 떼돈 벌 겁니다, 역사의 요리사 장경! 하는 것이 어쩐지, 이 아저씨가 숨어살면서 어지간히 마음이 찌들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장경이라는 작가는 저런 식의 독설적인 자기 비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 좀처럼 보기 힘든 자신감에 기대가 들기도 했다.

현재 1권만 읽었는데, 아무래도 장경이라는 작가는 무거워야 한다는 느낌. 예전의 벽호에서부터 가벼워지고자 시도했으나, 그 가벼움은 어쩐지 애처로워 보인다. 황금인형에서도 마찬가지. 인물 자체의 설정을 가볍게 하고자 했으나, 글 전체의 흐름에 맞지 않는 가벼움이라고 느꼈다. 뭐 모르지, 내게 장경은 언제까지나 암왕의 작가로 남아있을테니까.

머릿말에는 한국무협에 대한 오랜 고민을 토로했다. 그 고민은 '글을 잘 쓰기 전까지'는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황금인형의 경우, 여전히 무협을 읽는 느낌이다. 무협을 읽는 느낌이 들면 이미 제대로 된 맥락의 한국 무협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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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과 햇살
김용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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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작가인 것 같은데 처음 이름을 들어본다. 역시 세상은 넓고 작가는 많다.

울진삼척 무장공비와 당시 신고 주민의 이야기를 2003년에 그리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울진삼척 사건의 주역들은 이제 환갑이 넘은 노인네들이 되어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이야기들은 이제 노인네들의 이야기이다. 반공과 적화통일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낡아버린 시대.

이념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돈 욕심으로 간첩생포를 주장하던 황봉만(이름 맞던가? -_-) 과, 이념이 뭔지도 모르고 이념만 주장하기에 자수가 아닌 체포당했음을 주장하던 배승태, 두 노인. 1960년대에는, 분명 자수한 것임에도 서로 체포당했음을 주장한다.

그 두 사람이 2000년도에는 서로, 그것이 사실은 자수였음을, 당시에는 자기들이 잘 못 생각했음을 서로 이야기하며 화해한다.

재미있게 읽었다. 이제 확실히 이념을 가지고 옳다 그르다 왈가왈부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은, 논쟁을 하는 사람들과 역사를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논쟁 자체로 서로가 서로의 논리에 승복한다든지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결국 논쟁이 시들해지고난 후의 얼마쯤에는 논쟁 자체가 의미없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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