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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16년 9월
평점 :
살면서 납득 되지 않는 일을 겪어야 할 때, 불편하고 불쾌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 차별과 폭력, 억압을 경험할 때 나는 당당하게 따지기보다 주변의 눈치를 본다. 내가 예민한 건지, 분란을 만드는 건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지, 애쓴다고 바뀔지…. 혼자 흥분해서 떠들 때마다 속상하고 외롭다. 이 모든 상황을 ‘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때마다, 심지어 친한 친구에게조차 ‘좋은 게 좋은 거’(애써 분쟁을 만들지 말라는 뜻에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혼란스럽다. 숨 막혀 미칠 지경인데 잠자코 있어야 하나? 하루에도 몇 번씩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을 모른 척 넘겨야 하나? 때로는 고통스러울 때가 있는데? 진짜 이런 기분, 나만 느끼는 건가.
이민경의 전작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봄알람, 2016)을 읽으면서 내가 시시때때로 느끼는, 설명하기 힘든 그 기분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많은 여성들이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입이 트인 것 같지는 않다만)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나와 다른 많은 여성들의 느낌이 오늘날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우리 엄마도, 할머니도, 증조할머니도, 김경숙도, 나혜석도, 어쩌면 신사임당도 지금의 우리와 비슷한 기분으로 살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 노력했을 것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대한의 변화를 시도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팔자려니’ 하며 살았을 것이고,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었을 테지. 이 모든 이야기는 점으로 흩어져서 까맣게 잊혔거나, 누군가에 의해 겨우 발견되었다. 그 ‘점’들을 이으면 선이 된다. 한숨이 나오지만 지금 이만큼이라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싸우고,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건 바로 아무개 아무개(!) 여성들의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점’들을 찾아서 이으면 우리의 계보가 된다. 기념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이 마저도 지워지고 말 것이다.
불과 10~20년 전까지도 법에 정조 관념이나 호주제 따위가 존재했다는 걸 상기하면 소름이 돋는다. 법의 내용도 끔찍하지만, ‘10~20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했다’는 사실이 더 경악스럽다. 말도 안 되는 걸 없애보려고 만신창이가 되도록 오랜 기간 싸웠던 여성들.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소름이 돋는’ 정도로 가만히 앉아서 호들갑을 떨 수 있다. 이제는 “정말 말도 안 돼, 그런 시절이 있었단 말이야?!”라며 어이없어하고 호들갑을 떨 수 있도록 만들어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학창시절 역사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지만, 여자들 이야기가 너무 없다는 점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가끔 등장하는 여성 위인(?)들에겐 항상 여성임을 밝히는 수식어가 있었다. 옛날 먼 옛날에는(그리 멀지도 않지만) 남자만 살았거나 여자들은 무능했거나, 무능할 수밖에 없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거나. 어릴 적 내 이름에는 왜 아버지랑, 아버지의 형제, 할아버지랑 같은 글자(성姓)가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왜 아버지 집안의 자식인가? 나는 어머니의 자식이기도 한데, 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도 궁금한데. 그래놓고 결혼하면 왜 남의 집안 자식이 된다는 건지. 난 대체 누구의 자식이란 말인지. 결혼해서 시댁에 가보니 시어머니는 “우리 집안”이라는 말보다 “이 집안 사람들”, “○씨 집안”이란 말을 더 자주 쓰셨다.(우리 엄마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시어머니의 자리는 어디쯤일까. 내게는 분명 시부모님이면서도 시‘집안’ 사람은 아닌 위치는 대체 뭐지? 엄마도 시어머니도 ‘집안’ 사람인 동시에 ‘바깥’ 사람인 아니, ‘집안’ 사람도 아니고 ‘바깥’ 사람도 아닌 이상한 위치에 있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렇다. 나는 아버지 집안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 집안 사람도 아니고, 시댁 사람도 아니다. 난 내가 필요할 때만 ‘집안’ 사람이고 결정적일 때는 ‘바깥’ 사람으로 규정된다는 걸 안다. 자기들 마음대로다.
이 책은 흥미로운 역사책이다. 몰랐거나 몰라도 되었거나 모르고 싶었거나 모른 척했던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제 우리들만의 이야기로 그쳐서는 곤란하다. 기억하고 기념하고 당당하게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당장 달려가 엄마의 이야기부터 듣고 싶다. 엄마의 이야기, 할머니의 이야기도 듣고 지금의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자리에 있는 건지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 그 이야기를 간직할 것이다.
이 책은 문제집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 들어본 적도 없다는 것에 열이 받는다. 무식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점이(나만 그런가...?) 이 책의 미덕이긴 한데, 내용을 좀더 풍부하게 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독자에게 묻고 찾아보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도 좋지만, 분명 ‘아 그랬구나’하고 멈추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생각해 보니 ‘아 그랬구나’가 책의 목적이랄 수도 있겠다. ‘아 그랬구나’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도 인구의 절반쯤 될 것 같으니. 제2, 제3의 독서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기본적인 안내서 역할은 충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많은 여성들에게 빚지고 있다. 그 빚으로 인해서 조금씩 빛을 보고 있다. 각자가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나도 점이 되어서 지금껏 이어온 선의 어디쯤엔가 자리 잡게 되기를. 저자의 표현처럼, 커튼의 구멍을 더 넓히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