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푸어 -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 가사 휴식 균형 잡기
브리짓 슐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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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타임 푸어〉는 어떤 분야의 책으로 놓을 수 있을까? 알라딘에서는 사회학 일반, 교양 인문학, 교양 심리학, 여성의 자기계발 저서로 분류했다. 제목만 놓고 보면 사회 문제를 다룬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나는 '여성 문제'로 읽었다.

 

저자는 〈워싱턴포스트〉기자이자,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를 둔 엄마다. 대다수의 현대인처럼 그녀도 늘 허둥지둥 정신없이 살아간다. 쫓기는 듯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하는 동안 저자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마도 "시간은 권력이었다."(107쪽)는 것 아닐까. 시간을 쥐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남자라는 사실(책 곳곳에 나온다)까지 종합하면 성별이 곧 권력이다. '시간 부족 현상은 구조적인 문제'라는 표현은 포괄적인만큼 모호하다. 시간 부족 현상은 남성 위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라고 해야 더 정확하다.

 

저자는 에릭 에릭슨이 말했던 '만족스러운 삶'의 열쇠(일, 사랑, 놀이)를 하나씩 짚어본다. 에릭 에릭슨의 견해가 옳은지 그른지는 미뤄두고, 여자들은 세 가지 열쇠 중 단 하나도 제대로 쥐고 있지 못하다. '남편은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아내는 집안일을 도맡는' 모델을 따르는 직장, 집안일(가사노동, 육아, '혈연 노동')은 여자(아내)가 책임지는 문화(혹은 관습) 속에서 여자들의 시간은 늘 '오염되어 있다'. "요즘 여자들의 '해야 할 일 목록'은 항상 꽉 차 있어요. 머릿속에서 24시간 내내 테이프가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죠. 해야 하는 모든 일이 한꺼번에 생각나는 겁니다."(47쪽) 어떤 일을 하든 다른 할일에 관한 생각이 끊이지 않는 것이 시간의 오염이다.

 

앞서 나는 시간 부족 현상이 '남성 위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했는데, 이러한 구조의 피해자는 여성뿐만이 아니다. 시간에 쫓기는 모두, 바쁜 것에 길들여진 모두가 피해자다.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남성들도 피해자이고, "세상이 자기에게 봉사하고 자기를 재밌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줄만"(328쪽) 아는 아이들도 피해자다.

 

시간에 쫒기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원하고 통쾌한 한방 같은 것은 없지만, 여러 가지 소소한(?) 팁은 있다. 446~455쪽에 걸친 부록에 저자가 깨달은 팁들이 실려 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주저 없이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자. 그리고 역사 속에서 '페미니스트'의 진정한 의미는 여자들이 개성을 찾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449쪽)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된다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들 중에서 상당수는 해결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여성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곧 페미니스트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정책 입안자들, 기업에서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들 등, 한마디로 '높으신 분들'이 지금 맡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가사 노동도 하고, 육아도 하고, 교육하고, 집안 행사도 다 챙겨 본다면 어떨까. 물론 직접 하는 거다. 안하면 사회적으로 질타 받는 거다. "나쁜 부모!" "이기적인 부모!" "집안은 내팽개치고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 "그렇게 일해서 얼마나 번다고 애를 외롭게 하나!" "집안 행사 하나 못 챙기고 빠지다니!" 등등의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비난을 받는 거다. 진작 그렇게 했다면 직장에서 지금 지위까지 오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네. 육아휴직은 제대로 쓸 수 있으려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상상만으로도 '높으신 분들'이 걱정된다. 3년만, 아니 1년만 해봐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이 얼마 전에 나온 〈아내 가뭄〉과 같은 종류로 보인다. 둘을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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