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몇 해 전에 중고로 구매했다. ‘공부라는 단어를 보고 샀던 것 같다. 장정일의 공부 방법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겠지. 출판사에서 제공한 소개글과 목차만 제대로 훑어봤더라도 이 책이 공부법에 관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을 텐데. 서문만 대충 읽고 덮어둔 흔적이 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시리즈처럼 이 책도 서평집 혹은 독후감 모음집이다. 많이 두껍지는 않은데 읽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 권으로 수십 권은 읽은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책의 요약과 논지, 장정일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원래 공부란 내가 조금 하고그 다음에는 당신이 하는 것’”(7)이라는 서문의 글이 드러내듯, 읽은 후에 공부해야 할(공부하고 싶은) 내용이 많다. 군사문화, 근대성, 세계화, 민주주의, 전체주의, 교육, 신자유주의 등의 주제를 다루는데(그런 주제를 담은 책을 다루거나 책에서 그런 문제를 뽑아낸 것이다), 그래서 장정일이 하고 싶은 말은 책을 읽자!”, “공부하자!”는 거 아닐까. 비판적인 시민이 되자는 거다. 서문에서 중용은 무지한 것,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5)는 것이란 말을 괜히 꺼낸 게 아니다. 공부하게 되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고, 자신의 입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기계적인 중용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인식하는 것,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표면이 아니라 이면을 보는 눈을 갖는 게 공부의 목적(?)이다.

 

제국의 몰락(엠마누엘 토드, 까치, 2003)미국 문화의 몰락(모리스 버만, 황금가지, 2002)을 다룬 과두정이 온다는 제목의 장에서 이러한 저자(장정일)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두 저자의 책은 서로 상이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배면에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어른거리고 있으며, 똑같이 민주주의란 더도 덜도 아닌, 책을 읽는 능력이다!’라고 답한다.”(181)라는 부분이다. 국가와 자본, 지식인에게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읽고 공부하자. 그냥 휘리릭 읽는 게 아니고, 공부하는 것. 독서와 공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는 잠시 미뤄두고,책을 읽는 능력공부하는 것의 기초이자 공부 자체다. 그래서 이 책 제목도 장정일의 독서가 아니라 장정일의 공부아니겠는가. 좀 과장해서 말하면, 독서가 곧 공부다.

 

초판이 2006년인 만큼 시간이 좀 흘렀지만, 책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민주주의가 없었던 지역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민주주의가 선취된 곳에서는 현대의 귀족(부자)들에 의해 과두정이 이루어지고 있다”(178), “더는 가난한 수재가 나올 수 없다. 부잣집 수재만 있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 교육은 민주주의가 아닌 과두제의 산실이며, 이는 모든 선진국이 맞이하고 있는 현실”(182) 등의 내용은 현재진행형이다. 요즘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 과두정조차 코미디지만. 어쨌든 책에서 다루는 공부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덧붙여_ 

1) 지난 해 갖고 있던 책의 절반 이상을 처분한 게 요즘 들어 상당히 뼈아프다(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영향이 책을 처분하는 데에까지 미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읽고 싶은 책이 다수 생겼는데, 원래 갖고 있던 것들도 몇 권 있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잊을만하면 다른 책에서 등장해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부추긴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남자의 탄생(전인권)도 처분한 책들이다. 젠장. 고민을 거듭한 끝에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는 이번에 다시 구입했다. 이런 헛짓을 하게 되다니, 앞으로 웬만해서는 책 처분할 마음이 들지 않겠지. 단순하게 살려다가 뭔가 더 복잡해졌다는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다.

 

2) 책을 읽고 나서 내용을 요약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난 시험 치는 것도 아닌데 뭐 꼭 그래야 하나, 생각했었는데(귀찮고 지루하고 힘겹기 때문에) 꼭 그래야 한다. 요약하는 것 자체가 공부가 되기도 할뿐더러, 나중에 요약한 글을 읽어 보면 어떤 책이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기억나기 때문이다(때로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요약해 놓은 글에서 당시 내 관심사와 사고방식도 알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읽어 보니까 그렇다.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나의 변화를 은밀하게(?) 감지할 수 있다. 찾아보니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읽고 쓴 독후감(2004)이 있었다. 그 독후감만 읽었으면 책 내용을 거의 알지 못했을 건데, 장정일의 공부를 읽고 내 독후감을 보니까 내가 무슨 말을 써놓은 건지 이해된다. 정말 글 못쓰는구나. 장정일과 내가 같은 책을 읽었는데(분명히 그러한데) 왜 각자 다른 책을 읽고 쓴 것 같은지. 손발이 오그라든다. 너무나도 명랑하게 이 책을 읽으니 애쓰지 않아도 당시 예송논쟁이나 북벌론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 흐름이 잡힌다.() ‘애쓰지 않아도잡히던 흐름을 기록해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애써도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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