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많은 버릇, 습관(몸, 마음, 생각)을 갖고 있다. 증상이 심각한 것들도 꽤 된다. 그 중 하나는 자정 무렵부터 초조해진다는 거다. 지금 나는 초조하다.

잠자리에 들어야만 `할 것 같아서` 초조하다. 읽던 책이 아무리 흥미로워도 아니, 흥미진진할수록 초조하다. 다음날 딱히 급한 일이 없어도 자야만 `할 것 같아서` 나는 자꾸만 시간을 확인한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심호흡을 해도 대개는 소용이 없다. 그럴 땐 그냥 자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누워서도 계속 보던 책 생각이 난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심각하다.

조금 전까지 읽던 책은 제1장을 읽고 덮었다. 점점 재밌는데 자정이다. 초조하다. 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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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6-11-08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후 다섯시부터 우울감이 온다는 거..

cobomi 2016-11-08 09:31   좋아요 0 | URL
아, 근데 왜 우울감이... 전 오후엔 몸은 약간 지치면서 기분은 들뜨거든요ㅋ

:Dora 2016-11-08 09:35   좋아요 0 | URL
와 저랑 정반대셔요... 전 자정부터 그렇거든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 서로 기분을 공유하면서 즐겨보아요 ㅋ

cobomi 2016-11-08 09:52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ㅎㅎㅎ 혼자만의 시간 좋죠~

감은빛 2016-11-08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야행성이라 자정이 되면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이 잘 되어요. 늘 늦게 잠들어서 아침이 힘들어요

cobomi 2016-11-08 20:4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편인데, 아기 때문에 요즘 더 초조한 거 같아요ㅜㅜ 자야만 한다는 압박ㅎ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류동수 옮김 / 양철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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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비즈니스북스, 2015)를 읽고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나는 의욕에 불타올라 갖고 있던 책 800여 권, 책장 두 개, 식기류의 절반 이상, 조리도구 절반 이상, 가전제품 몇 가지, 문구류의 절반 이상, 안 듣는 음반, 안 입는 옷, 오래 되고 낡은 신발, 초등학교 때부터 써서 모아온 일기장 등을 처분했다. 내가 이렇게 부자였다니!

 

가장 덩치가 크고 탈이 많았던 물건은 소파였다. 남편과의 협상이 필요했다. 결혼 준비를 하며 "나는 TV 잘 안 보니까 그건 없어도 된다"던 남편이었으나(그래서 사지 않았는데 선물로 받았다), 내가 TV를 처분하겠다고 선언하자 크게 반발했다. 지난 5년 동안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리 설득하고 협박해도 TV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 소파라도 처분하겠다고 하니 TV와 소파는 세트 상품이라나. 어이가 없었다. 당시 나는 '심플 라이프'에 상당히 꽂혀 있었고, TV와 소파 둘 다 나의 심플한 삶을 방해하는 짐짝으로 보였다. 여러 날을 협상한 끝에 우리 부부는 소파를 처분하기로 합의했다.

 

일사천리로 소파를 처분한 후 한동안 내 기분은 최고였다. 환해진 거실을 보니 집이 몇 평은 더 넓어 보였다. 거실에 놓여 있던 TV도 골방으로 옮기고, 남편에게 '당신만의 방'이라며 맘껏 TV를 보라고 선심 쓰는 척했다. TV까지 사라진 거실은 휑뎅그렁한 나머지 목소리마저 울릴 지경이었다. 그래, 이게 심플 라이프지!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살기로 한 결심 자체를 후회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몇 가지 선택들을 후회했는데, 이를테면 앉아서 쉴 곳이 마땅찮아졌다는 사실(바닥에 주저앉을 때마다 어쩐지 슬프다)... 처분한 책 대여섯 권을 다시 구입했고, 심지어 그 사이 품절된 책도 있었다는 것... 기분에 휩싸여 성급하게 행동한 탓이다.

 

물론 '심플 라이프'를 향한 내 실천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매우 느리게 진행중이다. 그 사이 읽게 된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는 언뜻 '심플 라이프'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내 생각에 둘은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다.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하는 가족의 이야기에서 '소비를 줄이는 것이 곧 환경보호'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플라스틱 없이 사는 게 가능해?'라고 묻기 전에 방향을 조금 바꾸는 것이다. 플라스틱만이 환경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과생산, 과소비, 과폐기(?) 아닌가. 필요도 없는 걸 마치 꼭 필요한 것처럼 여겨서 사고, 버리는 것. 물건이 나에게, 나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이를테면 편리함)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상.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데도 여유(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심리적...)는 별로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 생활방식에 있다.

 

또 하나. 저자는 상품 포장이 지나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포장 뜯다가 열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그걸 처리하느라 받은 열로는 물도 끓일 수 있다. 식료품의 경우에 '장기 보존'이 꼭 필요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깨끗해 보이는 것일수록(손질 과정이 더 많은 상품일수록) 뭔가 덜 신선한 느낌이 들어서 찜찜하다. 꼭 그렇게까지 포장을 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까? 그렇게 해야 더 잘 팔리는 건가? 왜 더 잘 팔리는 거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플라스틱 없이 살기'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프로젝트를 다루는데도, 책은 시종일관 유쾌하며 술술 읽힌다. 번역가의 솜씨에 감탄한 대목이 여럿 있었다. 낄낄거리며 읽었지만 머릿속 한켠에서는 '나는 어떤 실천을 하면 좋을까'를 계속 생각했다. 결론은 '심플 라이프'지만, 기왕이면 플라스틱을 더 줄이는 걸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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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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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평생 숙제 같은 것. 숙제라고 하면 해결해야 할 것이란 느낌이 강하지만, 해결해야 한다기보다 의문스럽고 이해하기 힘들어서 어떻게든 설명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픈 문제랄까. 사건을 끊임없이 되돌려 보면서 스스로 납득할만한 설명을 찾는 것. 가정폭력 아니, ‘아내 폭력은 내게 그런 문제다.

 

아주 친밀한 폭력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또하나의문화, 2001)의 개정판이다. 그 사실을 모르고 구입했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는 예전에 구입해 놓고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얼마 전(불과 1~2개월 전) 중고로 팔아버렸는데, 같은 책을 제목이 바뀐 줄 모르고 산 것이다. 이건 읽어야 할 책인가 보다 싶어서 펼쳐 들었다. 읽는 내내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폭력 남편들의 인터뷰. 워딩 하나하나가 어쩜 그렇게 우리 아버지가 하는 말 같지? 설마 우리 아버지도 인터뷰에 참여했던 건가 의심할 정도로 익숙하고, 한 걸음 떨어져 글로 읽는데도 직접 듣고 있는 것처럼 거북했다. 그 말들을 숱하게 들으며 자랐지만 내겐 그걸 분석할 능력이 없었으니(있었다 해도 크게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진 않지만) 안타깝다.

 

나는 아내 폭력이 다반사로 이뤄지는 가정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의(지금도 결혼 전의) ‘가족’, ‘가정’, ‘을 생각하면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이 거의 없다. 숨기고 싶고 혼자(우리 가족만이)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내가 너무 부정적인가? 우울한가? 다시 되짚어 봐도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선택된 기억일 뿐인가? 내게 집이란 언제나 도망가고 싶은 곳, 기가 빠지는(‘기가 빨리는’) 느낌, 무기력한 곳이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적도 많고, 아버지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한 적도 많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데에 죄책감을 느낀 적도 많다. 부모님의 불화,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그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집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무엇이?),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하찮게, 가엾게 여길까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이 이혼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살게 될까봐 두렵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아버지는 왜 저럴까?’ 생각했다. 알고 싶었다. 이해하게 된다면 아버지를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더불어 어머니의 삶도 이해하고 싶었다. 나의 삶, 나 자신도 설명하고 이해하고 싶었다.

 

책에는 내가 했던 생각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우리 집은 왜 이 모양일까, 엄마는 왜 저럴까, 엄마가 참으면 안 되나, 엄마만 가만히있으면 집이 평화롭지 않을까. 아빠는 왜 저렇게 화를 낼까,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저런 방법 밖에 없는 걸까, 아빠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부모님은 왜 결혼했을까, 둘은 왜 이혼하지 않을까,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가장의 권위라는 게 뭘까, 부모님 둘 다 일하는데 왜 엄마만 집안일을 하는 건가, ‘여자는왜 그렇게 살아야 하나, 다른 집도 이런 모습일까. 그리고 나도’ ‘행복한 가정에 살고 싶다는 생각. 차츰 가정이란 게 꼭 필요한가, 결혼을 꼭 해야 하나로 바뀌었지만. 나는 내가 ‘N포 세대여서가 아니라 행복한 가정에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가정을 꾸린다는 것, 엄마처럼 산다는 것, 행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행복한 가정이란 뭔가? 구타(폭력)만 없으면 행복한가? 꼭 제도권의 결혼 제도에 편입되어야 행복할까? 부부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그럼에도 나는 결혼을 함으로써 한 가정에서 또 다른 가정으로 도망을 온 셈이다(내게는 결혼이 부모님이 계신 집에서의 탈출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세상에, 저런 경우도 있단 말이야?’라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아야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책 내용에 놀라는 사람이라면 평화로운가정을 경험했을 것이고(적어도 아내 폭력은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가정에 대해서, 가족 제도에 대해서, 폭력에 대해서, 여성에 대해서, 가정 내 권력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책을 통해 저자의 분석을 따라 가다 보니 한껏 차분하게 내 기억을 더듬을 수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참기가 어려웠다. 내 경험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나는 분노와 좌절, 무기력, 슬픔, 외로움, 곤란함 따위를 느껴야 했다. 지금 내 생활도 돌이켜본다. 나는 행복한가, 나는 과연 가부장제 가족 제도와 얼마만큼 가깝거나 먼 것인가, 내가 여자라서감당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게 당연한가, 당연하지 않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 폭력은 비정상적인 사람(알코올중독, 사회 부적응, 분노조절장애, 우울, 실직)의 일탈적인 행동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아내 폭력이 가부장제 가족 제도의 산물이라 본다. 가부장제 가족 제도를 유지하는 한 비정상적인 사람정상으로 돌리려는 노력은 ‘아내 폭력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아내 폭력자체가 가부장제 가족 제도를 지탱하고 있는 하나의 축이기 때문이다. ‘아내 폭력은 왜 잘못되었는가? 그것이 가족 구성원 모두를 힘들게 하고, 가족 해체의 원인이 되기 때문인가? ‘아내 폭력은 예외적인(비정상적인) 상황일 뿐인가? 이 모든 질문은 가정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상적인가정은 행복하고 바람직하다는 환상을 부추긴다.

 

가부장제 가족 제도는 규범적인 성 역할을 중심으로 돌아갈 뿐이다. 남자는 어떠해야 하고,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것.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머니, 아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 가장은 어떠해야 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어떠해야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이 제대로돌아갈 때 가정은 화목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서 제 기능을 한다는 거다. 그림이 그려진다. 내게는 무척 익숙한 풍경, ‘여자만 참으면 만사가 평화로운상태.

 

저자는 여기에 질문을 던진다. 나도 함께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정답으로 주어졌던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우리가 평화, 화목, 정상(正常) 따위를 말할 때는 되물어야 한다. 누구의, 누구를 위한 평화와 화목, 정상인가. 모두에게 평화로운 상태가 과연 있기나 한가. 그리고 부모님이, 특히 아버지가 왜 그런 언행을 일삼았는지 이해가 된다. 아버지의 언행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는 가부장제 가족 제도에서 본인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뜻에서다.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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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음 2016-11-03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이 좀더 구체적인 주제를 다루네요. 솔직한 글 잘 읽었습니다

cobomi 2016-11-05 23:1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6-11-2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꼭 사서 읽어볼게요. 불끈!!

cobomi 2016-11-27 07:55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리뷰가 벌써 기다려져요~
 
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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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쳐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정 무렵까지 쉴 틈이 없다. 내가 임신했을 때 친구 몇 명이 이제 헬 게이트가 열렸다며 겁을 주었는데 온몸으로 실감한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미처 몰랐다. 심지어 함께 노는데도 나만 기진맥진이다. 홀린 듯이 엄마됨을 후회함이라는 책을 읽었다. 다 읽고서 드는 생각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음’(책 내용과는 별개로). 답답함이 밀려왔다. 심신이 너덜너덜하다.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나 요즘 육아 때문에 정신없고 피곤해서 독후감 쓸 기력이 없어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인다.”(16), “미루겠다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32)라니. 이런 글을 읽고서 독후감을 안 쓰자니 아이의 똥 기저귀를 안 갈고 재우는 기분이다. 얼마나 대단한 걸 쓰겠다고 미루고 고심하는 건지. 말 그대로 독후감(讀後感). 읽은 후 감상을 쓰는 거다. 간단해, 아무렴.

 

 은유 작가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지난 해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책도 그렇다. 최대한 천천히 읽고 싶어서 별로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오래 붙들고 읽었다.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가 부제(副題).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대단하다. 내가 지금 독후감을 안 쓰려다 쓰고 있으니까. 독자가 '글 쓰는 사람'이 되는 데 보탬을 주기 위해 작가가 직접 모은 문장들에다 생각을 덧붙인 책이다. 읽다 보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 아무 글이라도, 엉망이고 엉뚱하더라도 쓰고 싶어진다. 그래서 책 읽는 동안 일기를 몇 편 썼다. 여러 모로 적절한 부제다.

 

 나는 글쓰기가 어렵다. “토사물 같은 말을 쏟아 내긴 싫”(23),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어렵고, 그 어수선한 생각의 파편을 보자니 괴롭”(25)기도 하다. 잘 쓴 글, 생각하게 만드는 글, 정확한 글, 시원한 글, 새로운 시각을 보태주는 글 등, 좋은 글을 보면 항상 글쓴이가 부럽다. 그저 독자’(讀者)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될 텐데도(그마저도 쉽지 않지만) 글 잘 쓰는 사람이고 싶다. 멋지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도 있고, 잘 읽기 위해서 잘 쓸 필요도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그나마 글로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변덕스러움, 나약함, 얄팍함, 불확실성을 어디서 확인할까. 이토록 오락가락하면서 과연 어디로 가는지 궤적을 어떻게 그려 볼까.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 글이 주는 선물 같다.”(167)

 

 처음 서재를 시작할 때 독후감을 공개할지 말지 고민했었다. 내 글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결코 잘 쓰지도 못할뿐더러 내가 책을 잘못 읽어냈을까 불안하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글에 대해 사람들로부터 별다른 지적을 받지는 않았지만(관심을 받지 못한 건지도), 스스로는 안다. 얼마나 어설프고 엉성한지. 꼼꼼히 읽고 생각하지도 않은 채 떠오르는 대로 적는 거다. 뭘 적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도 일단 쓴다. 읽고 쓰고, 고치면서 다시 읽고 생각하는 거다(쓰고 고치면서 다시 읽고 생각하는 게 잘 안 된다, 그래서 읽는 것도 엉성하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그 과정의 반복인지도 모르겠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고치고 생각하고 쓰고. 번거롭고 고되고 귀찮고 힘들다. 그러다가 문득, 왜 쓰고 있는지 돌이켜 본다. 써야만 하니까 쓰는 거 아닌가. 안 쓰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 느낌이 참 고약하다. 뚜렷한 실체도 없이 마음을 짓누른다.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니고, 쓴다고 해서 가볍고 후련해지는 것도 아닌데.

 

 〈쓰기의 말들을 읽으며 자신 안의 쓰려는 본능(?)’을 일깨울 기회를 갖길. 그리고 독후감이라도 써보자.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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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16-10-26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고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인다.` 아주 콕 찔리는 말 이네요.... 그리고 힘내십시요~ 아이가 엄마를 힘들게 하지만 누워있을때가 걸어다닐때보다 낫고 걸어다닐때가 뛰어다닐때보다 낫다는 말이 그리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힘들게 하다 잠들면 예쁘기도 할거구요^^

cobomi 2016-11-01 08:16   좋아요 0 | URL
아기가 저를 힘들게 한다기보다는, 제가 이 상황 자체를 힘겹게 생각할 때가 많아요. 워낙 생활의 변화가 급격해서요ㅎㅎ 말씀하신대로 아기가 잠들면 무척 예뻐요. 계속 잤으면 좋겠어요ㅋㅋㅋㅋ

cyrus 2016-10-2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회원 댓글로 남의 글을 지적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어그로꾼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언제 나타날 지 모르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평소대로 글을 쓰면 됩니다. ^^

cobomi 2016-11-01 08:20   좋아요 0 | URL
`어그로`라는 단어가 이렇게도 쓰이는 줄 미처 몰랐어요. 저도 온라인 게임(mmorpg) 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단어거든요ㅎㅎ
어그로 유발자가 나타난다면 관심을 안 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거라고, 머리로는 생각합니다ㅎㅎ
 
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곤도 마코토 지음, 이근아 옮김 / 더난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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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검진과 수술, 함부로 받지 마라!"

이런 도발적인 문구가 띠지에 실려 있다.

음?!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 병을 방치하는 편이 치료를 받는 것보다 고통이 적을 수 있다는 거다.

치료를 받는 편이 오히려 더 고통스러울 뿐더러,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보장도 없고 삶의 질을 떨어뜨릴 확률도 높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잉 검진 및 진료, 약물 과다 복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병은 최대한 방치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나름 여러 가지 근거를 들고 있는데, 솔직히 신뢰하기 망설여지는 수준으로 기술된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2012년 미국 의사회가 발간하는 어느 잡지에"(37쪽), "1990년대 영국에서 진행된 실험 한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50쪽; 대체 무슨 실험인지 이름조차 말하지 않음.) 등인데, 실험이나 문헌의 제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게 꽤 많다.

 

근거가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의 주장에 상당히 동의하는 편이다.

내 생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임신, 출산으로 산부인과에 자주 갔다)

일단 귀찮기도 하고(접수-대기-광속진료-처방 등의 과정),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굴거나(공포 조장) '그렇게 몸을 관리하면 어떡하냐'는 식의 어투로 나를 죄인 모드에 젖게 만드는 의사들을 만날까봐(종종 만났다) 가기 싫다.

게다가 하나마나한 소리를 늘어놓는 의사도 있다.("스트레스를 피하고, 휴식을 취해야 하며.......")

여러 검사를 받게 만들고 이것저것 약을 잔뜩 처방하는 의사를 만날 때는 뭔가 속는 기분이다.

물론 환자를 속이지는 않겠지만, '봉'이 되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나는 병에 걸리는 것보다 그 병으로 인한 고통이 훨씬 두렵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고통스러울 거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질병을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신체적 통증, 가까운 사람들의 고생, 경제적 부담 등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런데 치료에 적극적일수록 오히려 고통이 증가한다면?

치료를 받아도 삶의 질이 현저히 낮아진다면 치료를 받아야 할까?

 

잘 본다고(치료 잘 한다고) 소문난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수술하고 약 잔뜩 받아오는데도 '이제 안 아프다'는 말을 듣기가 힘들다.

그렇게 아픈 채로 계속 살아야 한다면 병원 안 가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병에 대해서 계속 신경 쓰면서 사는 것보다는 마음이 홀가분할지도 모른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내 몸에 대해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어떤 죽음(삶)을 원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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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10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 때문에 생기는 고통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병 진단을 받은 이후로 평소 먹던 음식을 못 먹게 되면 절망감이 듭니다. ^^;;

cobomi 2016-10-10 18:02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저도 그런 적 있어요. 괜히 더 먹고 싶어져서 괴로웠죠ㅎㅎ